Page 59 - 대한사랑 12월호
P. 59

2024. 12





                                   내가 임시망명정부에 가담해서 항일 투사들과 생사 존몰(存沒)을 같이 할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나의 사사로운 일에서 비롯되었다. 다만 민족을 대
                                   표하는 임시정부가 내게 할 일을 주었고, 내가 맡은 일을 했을 뿐이다. 주

                                   어지고 맡겨진 일을 모르는 체하고 내치는 재주가 내게는 없었던 탓이다.
                                   그러니 나를 알고 지내는 주위 사람들이 나를 치켜세우는 것은 오로지 나

                                   의 그런 재주 없음을 사 주는 까닭에서일 것이다.

                                                                   -정정화의 회고록 『녹두꽃』의 서문 중에서-









                                  독립운동은 총과 칼로만 하는 것은 아니다. 남자만 하는 것은 더욱 아니
                                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자신이 처한 위치에서 자신의 잠재 능력을 최대

                                한 발휘하여 조국 광복을 쟁취하려는 것이 바로 독립운동이다. “힘이 있는
                                자는 힘으로, 돈이 있는 자는 돈으로, 정성이 있는 자는 정성으로” 모든 분

                                야에서 독립운동은 전개되었다.
                                  대한의 여성 독립운동가들도 마찬가지였다. 남자현 지사는 만주 벌판을

                                누비며 일본군과 끊임없이 싸웠으며, 유관순 열사는 감옥에서도 대한 독
                                립 만세를 절규하다가 쓰러졌다. 이 밖에도 수많은 여성이 독립운동 전선

                                에서 조국 광복을 갈구하며 분투하며 산화하면서 잊혀졌다. 우리 후손들
                                로서는 마땅히 이들의 삶과 사상을 널리 알려야 하리라.



                                여섯 번이나 국경을 넘나든 임시정부의 밀사

                                  매서운 겨울바람 부는 1920년 1월 초 남대문 역(오늘날 서울역). 스무 살의
                                가냘픈 여인이 의주행 열차를 초조하게 기다린다. 목적지는 중국 상하이.

                                그는 작년 10월에 망명한 시아버지와 남편을 찾아가는 길이다. 초행길인
                                그는 허리춤에 깊이 매여 있는 전대(纏帶, 돈주머니)가 무사한 지 거듭 확인했

                                다. 수색, 화천, 능곡을 거쳐 일산역을 지나서야 경의선 열차에 타고 있음
                                을 실감했다. 여인의 이름은 정정화.



                                                                                                  57




       대한사랑_12월_본문.indd   57                                                                  2024-11-26   오전 11:53:23
   54   55   56   57   58   59   60   61   62   63   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