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2 - 대한사랑 1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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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통하여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3) 대방고지

              대방은 우리에게 대방군으로 더 친숙한 곳이다. 대방군은 한나라 때 설치한 군

            인데 대방지역에 설치하였기 때문에 그런 이름이 붙은 것이다. 대수가 흐르는 곳
            이라서 대방이라고 본다면 한나라의 행정구역으로 대방군이 생기기 훨씬 전부터

            대방은 있었을 것이다. 따라서 대방고지는 ‘대방의 옛땅’이다. 그렇다면 대방은
            언제부터 있었을까? 문헌상 가장 오래된 대방에 관한 기록은 『태백일사』 〈삼한
            관경본기〉에 나오는데 놀랍게도 대방이 백제라는 명칭과 함께 단군조선 초기부

            터 있었다.




                 치두남(蚩頭男)은 치우천황의 후손이다. 용맹과 지혜로 세상에 소문이 자
                 자하였다. 단군께서 불러 만나 보시고 기특하게 여겨 곧 번한 왕으로 임

                 명하고 아울러 우순의 정치를 감독하게 하셨다. 경자년에, 요수遼水 주위
                 에 12성을 쌓으니 험독(險瀆), 영지(令支), 탕지(湯池), 용도(桶道), 거용(渠鄘),

                 한성(汗城), 개평(蓋平), 대방(帶方), 백제(百濟), 장령(長嶺), 갈산(碣山), 여성(黎城)
                 이 그것이다.



              진한의 대단군, 즉 초대 단군왕검께서 치우천황의 후손인 치두남을 번한왕으
            로 임명을 했고, 치두남은 경자년(서기전 2301년)에 요수(하북성 난하) 주위에 12개의

            성을 쌓았는데 여기에 대방과 백제가 등장하고 있다. 대방과 백제라는 지명은 이
            미 이때부터 혹은 그 이전부터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요수 주위에 세워진 백

            제성이 지리적으로 소서노의 백제와 관련이 있는가? 번조선의 초대 임금 치두남
            이 세웠으니 이곳이 번조선이 위치했던 곳임은 자명하다. 따라서 진번 사이의 땅
            과도 무관하다 할 수 없고, 여기 대방이말로 후세의 사가들이 얘기한 대방고지일

            것이다. 게다가 험독, 탕지, 갈산(갈석산-필자) 등은 번조선의 도읍지이거나 그와
            아주 가까운 곳에 있는 지명들이다.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소서노가 ‘남쪽으로 달려가서 진번사이에 있는 바다 가
            까운 외진 땅’에서 나라의 기초를 다지고 경인년에 고주몽 성제로부터 어하라 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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