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0 - 대한사랑 1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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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한서』 〈조선전〉에서 한사군의 구체적인 이름을 진번, 낙랑, 임둔, 현토라고
하였다. 한무제가 위만정권을 멸할 당시 현장에서 이 상황을 지켜보았을 사마천
은 사군이라고만 했을 뿐 구체적인 이름을 남기지 못했는데, 사마천보다 무려
100년 이상 후세에 나온 반고는 사군의 구체적인 이름을 제시했다. 『한서』 〈조
선전〉은 반고가 『사기』 〈조선열전〉의 기록을 거의 그대로 베껴서 쓴 것으로 평
가되는데, 사마천도 거명하지 못했던 사군의 이름을 반고가 기록한 것은 문제가
아닐 수가 없다. 특히, 진번(眞番)은 사마천의 『사기』에 처음 나오는 지명이므로
반고가 사군의 하나로 지목한 진번은 『사기』에서 차용한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그런데 『사기』 〈조선열전〉에 처음 나오는 진번이라는 말이 과연 한사군의 하나
라고 할만한 고유지명이 될 수 있는가가 문제이다.
『사기』 〈조선열전〉에 나오는 “自始全燕時(자시전연시) 嘗略屬眞番朝鮮(상략속진번
조선) 爲置吏築障塞(위치리축장새)”가 바로 진번에 대한 최초의 기록이다. 사서에 나
오는 진번은 모두 여기에서 출발한다.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에서
는 “처음 연나라의 전성기로부터 일찍이 진번과 조선을 침략하여 복속시키고, 관
리를 두어 국경에 성과 요새를 쌓았다.”고 해석한다. 진번조선을 진번과 조선이
라고 풀이하고 있다. ‘진번조선’을 ‘진번과 조선’으로 번역하는 것은 진번이라는
고유명사가 존재할 때만이 가능한 것이다. 만일 진번이 한사군의 하나이고, 그
위치가 강단사학계에서 주장하듯이 황해도 어디쯤이라면 그런 내용이 『삼국사
기』, 『삼국유사』를 비롯한 국내 사서에서 한 번쯤 나올 법도 하건만 중국사서의
기록을 인용한 것 외에는 없다. 진번이라는 이름을 가진 지역이 없었기 때문이
다. 그럼에도 많은 이들이 진번과 조선으로 나누어 해석하게 된 것은 반고가 비
정한 한사군 명칭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한 데 따른 오해에서 빚어진 것이다. 따라
서 ‘진번조선’을 ‘진번과 조선’으로 보는 것은 옳지 않다. ‘진번조선’은 ‘진조선과
번조선’을 말하는 것이다.
『단군세기』에 따르면 단군조선은 원래 단군왕검께서 아사달에 나라를 세운 서
기전 2333년 무진년부터 진한, 번한, 마한의 삼한을 일체로 삼는 정치체제를 가
진 나라였다. 그렇게 1,048년을 지속하다가 서기전 1,285년부터 진조선, 번조
선, 막조선이라는 삼조선 체제로 관제가 개편된 채로 내려오던 중이었다. 이때에
전국시대 강자로 부상한 연나라가 번조선 왕 수한의 나약함을 보고 자주 침략하
였고, 도읍지까지 쳐들어오는 지경에 이르자, 수유 사람 기후가 군사 5천으로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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