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3 - 월간 대한사랑_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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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통맥 바로잡기ㅣ백제 ②
한국의 고유사상을 형상화한
백제금동대향로
글. 최영성(한국전통문화대학교 무형유산학과 교수)
1. 백제 문화와 전통을 담은 융합체
1993년 12월 12일, 충청남도 부여군 부 리고 백제의 통치 이념을 대내외에 확고하
여읍 능산리(陵山里)에서 백제금동대향로(국 게 표방할 필요가 있었을 법하다. 이 글에
보)가 발굴되었다. 발굴된 장소는 백제 제 서 백제금동대향로를 성왕과 관련시켜 보
26대 성왕(聖王)의 능사(陵寺)가 있었던 옛터 는 것은 이 때문이다.
다. 발굴된 곳이 능사의 옛터이다보니 향 필자는 이 향로에 대해, 백제의 문화 전
로를 제사용으로 만들었을 것이라고 짐작 통과 통치 이념을 담은 ‘융합체’라고 정의
하는 이들이 많다. 그러나 이 향로는 예사 하고 싶다. 백제가 멸망하기 1세기 전쯤에
물건은 아닌 것 같다. 백제 문화가 활발발(活潑潑)하게 살아 있었
제작 목적을 단정지어 말할 수는 없다. 음을 느끼게 한다.
다만 성왕 16년(538)에 웅진에서 사비로 유물은 스스로 말하지 않는다. 유물에
천도(遷都)를 단행한 성왕의 정치 행위를 빼 대한 해석은 후세인의 몫이다. 보는 사람
놓고는 제대로 이해하기 어려울 듯하다. 의 관점에서 해석하는 것은 당연하다. 다
사비성으로 도읍을 옮기고 국호마저 일시 만 사리와 논리를 떠난 비합리적인 해석은
‘남부여’로 바꾼 성왕의 정치 행위는 백제 곤란하다. 또한 백제대향로의 의미 체계와
사의 일대 사건임에 분명하다. 이런 중대 상징 체계는 ‘중층적(重層的)’이므로 어느 한
사건이 단순하게 국면 전환용으로 이루어 쪽으로 편향되게 해석하는 것 역시 바람직
졌을 것 같지는 않다. 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향로를 통해 미루어본다면, 북부여로부 이 글에서는 백제금동대향로가 한국의
터 남부여에까지 이어지는 백제의 문화 전 고유사상을 형상화한 것이라는 점에 주안
통을 더욱 충실히 계승하겠다는 다짐, 그 (主眼)을 두고 논의를 전개하려 한다. 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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