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8 - 월간 대한사랑_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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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야가 열리고, 서쪽은 큰 바다(황해)가                찾아오자 곧바로 그를 태자로 삼았고, 그
              가로막고 있습니다. 이처럼 천연적으로                  때가 재위 19년 여름(4월)인데 5개월 뒤에
              험준한 지형과 지리적인 이로움은 얻기                  왕이 40세로 승하하자 곧바로 제위에 오

              가 쉽지 않은 형세이오니, 마땅히 이곳
                                                    른 것으로 나온다. 이에 비류와 온조가 이
              에 도읍을 정하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를 비관하여 새로운 나라를 개창하려고
              다른 곳을 더 찾지 마옵소서.” 온조가
                                                    남쪽으로 떠나는 것으로 그려져 있다. 그
              신하 열 명의 의견을 좇아 드디어 하남
                                                    러나 여기에서는 유리가 오기 전부터 고주
              위지성(慰支城)에 도읍을 정하고, 국호를
                                                    몽이 ‘만약 유리가 온다면 유리를 태자로
              ‘백제’라 하였다. ‘백제’가 왔기 때문에
                                                    봉할 것’이라고 말을 해왔기 때문에 평소
              그렇게 부른 것이다(仍稱百濟 以百濟來故得
                                                    에 늘 그 말을 들어왔던 소서노가 이를 염
              號也). 뒤에 비류가 세상을 떠나자 그 신
              하와 백성이 그 땅을 바치며 복종했다.                 려하여 두 아들과 함께 남쪽으로 떠나는
                                                    것으로 나온다. 『삼국사기』에서는 비류와
             백제 탄생 과정이 『삼국사기』 내용과는                  온조가 남쪽으로 떠날 때 소서노가 함께
           상이한 부분이 많다.                              떠났다는 기록이 없는 반면, 『태백일사』에
             (가)에서는 우선 비류와 온조의 어머                   서는 오히려 소서노가 이를 주도하고 있

           니 이름이 소서노(召西弩)라고 나오고 있다.                 다. 새로운 나라를 개창한 주인공이 소서
           『삼국사기』에서 소서노(召西奴)는 졸본사람                  노라는 것을 말한다.

           연타발의 딸로서 우태와 결혼해서 비류와                      패대의 땅이 기름지고 물자가 풍부하다
           온조를 낳고 과부로 살다가 고주몽과 재                    는 풍문을 듣고 남쪽으로 갔는데 배달의

           혼한 여인으로 그리고 있다. 그러나 여러                   숙본 『환단고기』에서는 이때가 경인년 3
           기록에 졸본부여 왕의 둘째 딸로 고주몽                    월이라고 하였다. 경인년은 서기전 31년인

           과 혼인한 바로 그 여인이며, 이름이 소서                  데, 이것은 연대상으로 전혀 맞지 않는 문
           노(召西弩)임을 처음으로 밝혀주고 있다.                   제가 있다. 그런데 광오이해사본  『환단고
                                                                                1)
             『삼국사기』 「고구려국본기」에서는 이때                  기』에서는 경인년이 아니라 기묘년(서기전

           동부여에서 장자 유리가 아버지 고주몽을                    42년)이라고 되어 있다. 1911년에 발간된







            1) 『환단고기』 광오이해사본은 원본 『환단고기』를 오형기가 필사한 필사본을 1979년에 광오이해사 조병
             윤 사장이 출판한 것이고, 배달의숙본은 이유립이 광오이해사본의 오기를 수정한 후 오형기의 발문을
             삭제하고 1983에 발행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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