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3 - 월간 대한사랑 7.8월호 통합
P. 53
2024. 7·8
하는 첫 부여이다. 이후 제2왕조 색불루단 은 후사 없이 붕어한다. 이어 고열가가 백성
군은 부여신궁에서 즉위하여 자신의 세력 의 사랑과 공경을 받고 공로가 많아 단군으
근거지로 삼는 것으로 볼 때, 부여의 세력이 로 추대를 받아 즉위하게 되었는데, 고열가
커져서 조선의 단군 자리에 오르게 되었음 단군은 나라가 이미 국운이 다하였음을 내
을 추정할 수 있고, 제3왕조 구물단군 때는 다보고 재위 58년(BCE 238)에 오가(五加)를 불
부여를 국호로 삼는 데까지 이른 것이다. 이 러모아 현인을 택해 단군으로 천거하라고
것이 부여 발전의 극치라고 할 수 있다. 이 하고 제위를 버리고 산으로 들어가 선인(仙
제 조선을 부여라 부르는 시대로 들어서고, 人)이 된다. 이로써 고조선의 중심인 진한의
이때 일어난 구서지회의 광명정신과 회복정 역사는 막을 내리게 된다. 이에 오가가 6년
신, 부흥정신은 후대에 전개되는 역사에 큰 동안 국사를 공동으로 집행하는 공화정 시
파급효과를 주는 분수령이 된다. 그중 해모 대가 열리고, 기사년(BCE 232)에 오가를 설득
수가 건국한 북부여는 대부여의 북쪽을 차지하 하여 공화정을 철폐하고 고조선을 계승하여 단
였다는 의미로 북부여라 한 것이다. 약 2천 년 군으로 추대된 분이 있으니, 바로 북부여의 시
동안 지속된 조선이라는 국호를 이어받지 조인 해모수다.
않고 2백 년 남짓 이어진 대부여의 국호를 일찍이 해모수는 고열가단군이 퇴위하기 1
계승함은 외형상의 지리적인 위치뿐 아니라 년 전, 임술년(BCE 239) 4월 8일 웅심산(지금의 길
내적으로는 구서지회의 정신을 이었음을 짐작 림성 서란(舒蘭))에서 기두하여 북부여를 건국하였
할 수 있게 한다. 고 재위 8년(BCE 232)이 되는 해에 오가의 공화
정 체제를 매듭짓고 고조선을 계승하게 된 것
4. 북부여의 건국자, 해모수 이다.
북부여 건국 과정은 고조선의 끝자락이자
대부여의 말기라고 할 수 있는 47세 고열가
단군 때의 역사를 살펴봐야 한다. 『단군세
기』에 따르면 고열가는 43세 물리단군의 현
손으로, 46세 보을단군 재위 당시 ‘한개’라
는 인물이 역모를 일으켜 임금의 자리를 찬
탈했을 때, 상장군으로서 의병을 일으켜 역
적의 무리를 격파하고 보을단군을 다시 모
셔 왔다. 난을 진압한 후에도 나라 상황이
좋지 않아 국력이 심히 약해졌고 보을단군
51
월간대한사랑_8,9호_본문(인쇄).indd 51 2024-07-22 오후 1:49: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