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4 - 월간 대한사랑 7.8월호 통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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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북부여에서도 고조선과 마찬가지로 여’이고, ‘졸본부여’는 후기 북부여를 의미
통치자의 호칭을 단군이라 칭했다는 것은 북부 한다. 그렇기에 ‘북부여·동부여·졸본부여’는
여가 고조선을 계승했음을 잘 나타낸다. 또한 북부여사의 전체적인 전개 과정을 나타내는
『삼국유사』 <북부여 조>는 『고기(古記)』를 인 역사흐름을 잘 보여준다 하겠다.
용하여 북부여사의 골자를 담고 있는데, 건
국 관련 내용을 살펴보면 해모수가 ‘오룡 5. 북부여사의 전체 전개 과정
거(五龍車)’를 타고 하늘에서 내려와 도읍하 북부여는 약 180년(BCE 239~BCE 58) 동
고 북부여를 세웠음을 기술하고 있다. 대개 안 존속한다. 비교적 짧은 역사를 지녔지만,
천자를 상징하는 영물인 용이 다섯 마리나 환국·배달·조선의 삼성조 시대와 고구려·백
등장하는 것은 이례적인 것으로, 이는 오가 제·신라의 삼국 시대를 잇는 고리인 점을 생
의 공화정 시대를 인계하여 새 역사시대를 여 각한다면, 그 중요도는 국가 지속 기간에 비
는 해모수의 등장을 표상한다고 할 수 있다. 례하지 않는다.
이 또한 고조선을 계승한 적통국은 북부여 북부여의 계보를 큰 틀에서 정리하자면, ‘전
임을 상징하는 것이며, 석주 이상룡 선생의 기 북부여’는 태조 해모수로부터 4세 고우루
『석주유고』 「서사록」의 기록을 보면 독립운 단군까지의 153년에 달하는 역사이고, ‘후
동가들 역시 고조선에서 북부여로 이어지는 기 북부여’는 5세 고두막단군과 6세 고무서
국맥(國脈)을 인식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단군까지 이어지는 28년의 역사이다. 이후
고구려의 건국자로 알려진 고주몽이 북부여의
대개 단군의 혈통은 북부여·동부여·졸본 단군의 위를 잇게 되는데, 그는 해모수의 현손
부여로부터 면면히 이어져 3천 년 동안 으로서 북부여를 계승하여 국호를 고구려로 바
끊어지지 않았다. 한 침상 위인데 다시 꾸게 된다. 즉 고주몽은 북부여의 7대 단군
어디에 기씨(箕氏:기자)가 코를 골며 잠잘 이자 고구려의 1대 태왕이 되는 것이다.
곳이 있었겠는가? 일설로는 해모수와 고주몽을 부자 관계
- 『석주유고』 「서사록」, 1911년 2월 24일 라 하지만, 이것은 북부여사의 소실로 일어
난 왜곡이고, 북부여사의 복원을 통해 4대
고조선의 맥을 이은 ‘북부여·동부여·졸본부 조 혈통 관계임을 확인할 수 있다. 「광개토
여’는 사실상 북부여사를 말한다. 북부여는 < 대왕릉비」의 비문도 이를 뒷받침하는데, ‘광
전기 북부여>와 <후기 북부여> 시대로 전개 개토태왕이 17세손’이라 함은 고구려의 창
되는데, 전기 북부여에서 후기 북부여로 넘 업조인 고주몽을 태조로 삼은 것이 아니라,
어가는 분기점에서 파생된 제후국이 ‘동부 주몽의 4대 선조인 해모수를 태조로 삼아 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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