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2 - 월간 대한사랑 7.8월호 통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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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이자 후기 북부여 시대를 연 고두막한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있다.
대한 기록을 전한다. 『단군세기』에 따르면, 47세 단군의 역사
넷째, 고주몽이 북부여의 7대 단군임을 로 이어진 고조선의 역사는 삼신오제(三神五帝)
밝히며 북부여의 국통이 고구려로 이어졌음 사상을 국가 경영의 근본 원리로 삼아 삼한관
을 전한다. 경제(三韓管境制)로 나라를 삼분할(진한·번한·마한)
다섯째, 만주와 대륙에서 여러 부여사가 하여 다스렸으며, 그중 중심이 되는 진한(辰韓)
전개되는 동안 고조선 강역에서 펼쳐진 또 은 수도를 두 번 천도하면서 삼왕조 시대를 거
다른 한민족사를 전하고 있다. 위만 정권, 치게 된다. 제2왕조의 끝자락인 43세 물리
최숭의 낙랑국 건설, 한강 이남의 남삼한 건 단군에 이르러서는 사냥꾼 우화충이 역모를
국 등이다. 일으키는데, 이는 조선 말기에 이르러 국운
이 이미 많이 쇠하였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이와 같이 부여사의 전모 뿐 아니라 기존의 인 사건이다. 욕살 구물이 천명을 받들어 병
고조선 강역에서 펼쳐지는 한민족사의 변천도 사를 일으켜 역적을 토벌하고 우화충을 잡
담고 있는 것이다. 『삼국유사』나 『삼국사기』 아 참수함으로써 그 공로를 인정받고 모든
에 비해 부여사를 소상히 전하고 있는 만큼 장수의 추대를 받아 44세 구물단군으로 즉
『북부여기』와 『가섭원부여기』를 1차 사료로 위하게 된다.
삼아 교차 검증을 통해 내용을 검토하고 부 구물단군은 국운이 다해가는 조선을 다
여사를 복원해야 할 터인데, 중국 사서에 기 시 크게 일신하려는 뜻을 품게 되는데, 그
대어 자국의 사서는 외면하는 현실은 그야 이면에는 신교(神敎)를 내려받는 사건이 있었
말로 전도된 의식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다. 『태백일사』 「소도경전본훈」에서 말하기
를, “어느 날 꿈에 천상의 상제님께 가르침(夢
3. ‘북부여’라는 국호의 의미 敎)을 받고 정치를 크게 혁신하려 하셨다”고 전
고조선 멸망 후 열국시대에 접어들었을 하면서, 아홉 가지 계율을 맹세하는 모임인 구
때, 고조선의 국통을 계승한 나라는 북부여 서지회(九誓之會)를 결성하여 이 구서의 글로써
다. 북부여는 열국의 중심 역할을 했고, 환 백성을 교화하였다고 한다. 구물단군은 신교
국·배달·단군조선의 삼성조(三聖祖) 역사와 이 를 내려받아 정치개혁의 움직임을 크게 일으키
후의 삼국의 역사를 잇는 중요한 고리라고 고 국호를 ‘대부여’라 하였다. 부여라는 나라
할 수 있다. 북부여가 고조선을 계승했다면 나 가 처음 생긴 것은 『규원사화』 기록으로 알
라 이름을 북조선이라 하지 않고 왜 북부여라 수 있듯이 제1왕조 초대 단군의 넷째 아들
했을까. 고조선 말기 상황을 살펴보면 이에 부여후가 세운 나라가 역사 기록상으로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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