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7 - 월간 대한사랑 7.8월호 통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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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7·8
한민족의 문화로 인정되고 있는 홍산문화(요하문명)가 있다. 이때는 고조선 시대와 그
이전 시대의 유물 유적이 나오고 있다요. 이 홍산문화를 일군 홍산인들은 상투를 틀었
다는 흔적이 요녕성(遼寧城) 우하량(牛河梁) 유적에서 나왔다. 우하량 유적 제2지점 1호 적
석총 제21호 무덤에서 상투를 고정시키는 데에 쓰이는 옥고가 나왔다. 유적을 발굴하
던 중국학자들을 당황케 한 옥기가 나온 것이다. 적석총이라서 무덤양식이 이미 동이
족의 묘제인데, 여기에서 상투를 틀 때 쓰는 물건이 나왔다.
옥고(玉箍)는 머리카락을 상투처럼 올리고 비녀를 꽂아 고정시키는 물건이다. 고(箍)는
테두리를 뜻하고 동사로는 (댓조각·금속 띠 등으로) ‘동여매다’, ‘졸라매다’, (띠 같은
것으로) ‘테를 씌우다’는 뜻이 담겨 있다. 대나무를 쪼개어 만든 테를 ‘죽고’라고 하고
쇠로 만든 테를 ‘철고’라고 한다. 옥으로 만든 테를 ‘옥고’라고 하는 것이다.
옥고는 상투를 고정시키기 위한 장신구이지만, 그 자체로도 인간이 하늘과 소통하는
매개물이기도 하다. 곧 나의 마음과 칠성에 계신 하나님의 마음이 하나가 되는데, 그 뜻을
두었던 것이 바로 옥고이다. 상명대 박선희 교수는 이 옥고가 고조선 시대에도 계속 발
전하였고, 옥고에서부터 한국 금관의 기본 양식이 유래되었다고 보고 있다.
고조선의 헤어스타일 상투
사마천의 『사기』에 보면, 위만이 상투를 하고 조선에 들어왔다고 한다. 위만은 사마
천의 『사기』와 반고의 『한서』에서 보듯이 "燕人(연인)" 이라 적혀 있다. 연나라 사람이라
는 것이다. 『삼국유사』에서도 ‘燕人’이라 적혀있음을 알 수 있다. 『후한서』나『삼국지』
등 중국 사서의 내용을 보면 고대에 우리 민족은 ‘머리를 틀어 올렸다’는 내용이 나온
다. 즉 연나라 사람인 위만이 고조선에 들어오면서 조선인의 복장을 하고 준왕의 호감
을 사려고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 국사 교과서들에도 대부분 연나라 사람 위만
이 조선인으로 변장할 때 조선옷을 입고 상투를 틀었다고 나온다. 그래서 단군조선을
계승한 위만조선으로 인정해주어야 된다고 주장한다.
상투를 한민족 고유 헤어스타일이며 상징임을 연나라 사람 위만도 인정한 것이고,
우리 스스로도 인정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상투를 고조선 고유의 헤어스타일로 보고
있었던 것이다. 조선 땅에 망명을 요청할 때 ‘동이족’ 문화를 따르겠다는 것을 보인 것
이 바로 ‘상투’이다.
홍산문명 유적지인 우하량에서
출토된 상투형 옥고(玉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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