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2 - 월간 대한사랑 7.8월호 통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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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몰시의 정황에 대해서 다음 해인 1946년에 생존자 채길영 씨는 "승조원들이
탑승한 조선인들을 갑자기 배 밑으로 내려가도록 채근하는 사이, 승조원들은 우
키시마호의 소함을 타고 배를 빠져나갔으며, 그 뒤에 배가 폭발했다"고 증언했
다. 또 다른 생존자 강이순 씨 역시 당시 배에 있던 승조원들이 사라지는 일들이
있었고, 배가 폭발하기 전에 승조원들이 기관실로 몰려갔으며, 이내 없어졌다고
증언했다. 그렇게 폭발 직전 배를 빠져나간 일본 해군은 25명 외엔 모두 생존했
다고 한다.
결론적으로 우키시마호 사건은 계획적으로 저질러진 대학살임을 알 수 있다.
일본이 항복을 선언한 이후, 사할린에서 퇴각하던 일본 해군들도 한국인에 대한
무차별 학살을 자행했다. 8월 18일에는 사할린의 가미시스카(上敷香)경찰서 화염
학살사건, 19일에는 미즈호(瑞穗)항 냉동학살사건 등이 있었다. 우키시마호 사건
역시 패전 후 ‘조선인 학살’이라는 일본의 조직적인 만행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
다.
은폐한 승선자 명부 일부 공개
일본 정부의 조직적인 은폐는 심각하다. 배에 탄 승선자 명부도 우키시마호 침
몰로 상실됐다고 지금껏 주장해왔다. 그러나 최근 2024년 5월 정보공개 청구에
응해 일본 후생노동성이 승선자 명부 3종을 공개하였고, 5월 31일 미야자키 마
사히사 후생노동성 부대신은 중의원 외무위원회에서 “승선자 등의 ‘명부’라고 이
름 붙은 자료가 70개 정도 있다”며 명부가 없다고 해온 그간의 입장을 뒤집었다.
명부가 버젓이 있었는데도 일본 정부는 수십 년간 거짓말을 한 것이다.
며칠 뒤인 6월 2일 일본 저널리스트 후세 유진 씨는 정보공개 청구로 확보한
우키시마호 기타 승선자 명부를 공개했다. <부산일보〉가 후세 씨를 통해 최초로
입수한 명부는 총 8가지로, 일본 아오모리현 일대 민간기업과 미사와 비행장 등
에 고용된 한국인 명단들로 추정된다. 이렇듯이 진실은 언젠가는 드러나는 법이
다. 일본 정부는 지금이라도 진상규명에 나서야 하고 진실 앞에 사죄해야 한다.
승선자 명부가 있다는 것이 밝혀졌으니 이제 그 명부를 모두 공개해야 한다.
2012년 8월 24일엔 <우키시마호희생자추모협회>가 부산에서 희생자 위령제
(8,000위)를 엄수했고, 이후 매년 개최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 피해자를 추모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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