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8 - 월간 대한사랑 7.8월호 통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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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조금 더 구체적으로 알아보자. 일본이 ‘무조건 항복’을 선언한 8월 15일

                로부터 1주일 뒤인 22일 오후 10시, 일본 북동쪽에 있는 아오모리현 시모키타반
                도 오미나토항구에서는 4,730톤급의 배 한 척이 출항했다. 일본 요코스카해군

                경비부 소관인 군함 우키시마호였다. 우키시마호는 원래 1937년 만들어진 오사
                카 상선 소속의 화물선으로 태평양 전쟁을 앞두고 1941년 군에 징발되어 군용

                선으로 이용되었고 1945년 4월 오미나토해군경비부로 편입되었다.
                  일본의 패전으로 광복을 맞이하자, 이 일본 해군특설함 우키시마호에는 일제
                에 의해 강제로 징용되었던 한국인 노동자 수천 명과 그 가족이 이 배에 몸을 싣

                게 되었다. 일본 본토 최북단인 아오모리현 시모키타 반도의 군사시설 공사장에
                서 참혹한 노동에 시달리다가 꿈에나 그리던 해방을 맞은 한국인들은 광복이 되

                었다는 말에 환호했고 고국으로 돌려보낸다는 말에 행복과 희망에 흥분을 감추
                지 못했다.

                  광복 후 사흘이 지난 8월 18일 우키시마호는 일본 오미나토항(大湊) 앞바다인
                무츠만에 정박하여 8월 19일부터 한국인을 태우기 시작하여 21일 승선을 완료

                했다. 마지막 배라는 소문에 조선인들은 몰려들었고 그들은 4730t급의 배에 그
                야말로 ‘우겨넣어질 정도로’ 태워졌다. 그리고 22일 밤 10시에 이 크고 무거운
                배는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항구를 출발했다. 오미나토에서 부산까지는 1,574

                ㎞로 시속 22㎞로 가면 사흘쯤 걸리는 거리였다. 그래도 사흘만 버티면 고국이
                었다. 힘들고 부대끼는 3일이지만, 그 시간만 지나면 꿈에도 그리던 고국 땅 부

                산인 것이다.
                  그런데 부산을 향해 나아가는 것처럼 보였던 우키시마호는 8월 24일 오후 5

                시쯤 방향을 바꿔 일본 해안선을 따라 남하하다 마이즈루 앞바다로 들어왔다.
                그리고 이 4730t급 거함은 해안에서 300m쯤 떨어진 곳에 이르러 멈춰 섰고,

                “쾅! 쾅! 쾅!” 하는 갑작스러운 폭발음과 함께 침몰했다. 이때가 8월 24일 오후 5
                시 20분쯤이었다.
                  “배 밑을 들여다보니까 마치 물이 땅에서 솟구쳐 오르는 모양으로 소용돌이치

                고 있었다. 그 소용돌이 속에 조선인 여자와 아이들이 빨려 들어가며 있는 힘을
                다해 손을 쳐들며 ‘아이고! 아이고!’ 라고 소리치며 울부짖었다. 그리고는 물에

                잠겼다. 지옥 같은 상태였다”라고 하세가와 나오시 당시 해군 승무원은 회상했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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