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5 - 월간 대한사랑 7.8월호 통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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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7·8
5. 윤봉길은 동학도(천도교도)였다
결국 매헌 윤봉길은 천도교도였다. 매헌이 인근 마을 배용순과 성혼하고 나서 얼마
안 가, 장인인 배성선의 동틀녘 주문 기도는 그대로 윤봉길 가문으로 전이된다. 매헌
이 사랑했던 동생 윤남의의 증언에 의하면, 매헌의 모친, 김원상 여사는 단 하루도 거
르지 않고 동틀 무렵이면 청수를 떠 놓고 축수를 드렸다고 한다. 모친이 아침 기도를
올리는 것은 모친이 온갖 정성으로 키운 매헌의 전언이 주효하였다.(필자와 자주 만난 사이
이기도 한 윤남의 선생은 고 노태우 대통령이 예산지역 국회의원 출마를 종용하였다고도 증언한 바 있다) 매
헌의 상해 의거 이후, 수감 상태의 연속은 이에 대한 매헌의 천도교 기록을 불가능하게
하였다. 그러나 일제가 매헌의 시천주 주문까지 막을 방도는 없었다.
여기서 매헌의 장인 배성선과 매헌의 모친 김원상의 동틀 무렵 주문 기도는 그대로
일치함을 살필 수 있다. 무릇 한 가문의 분위기를 일러 ‘가풍’이라 한다. 윤남의의 고증
에 의한 아침 청수 기도는 매헌의 가풍이 처가의 가풍을 따라서 점차 동학화하였음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증언이다. 이것이다. 동학 사상으로의 동화, 이것이 바로 스물다섯
살의 매헌 윤봉길이 분연히 상해 의거를 감행할 수 있었던, 청년 영웅으로 뜨거울 수
있었던 매헌 심상의 주요한 변별성이다.
동학의 궁극은 전쟁이 아니라 평화다. 평소 모친을 존경하였던 매헌의 정신계에는
하늘님이라는 영원의 나라가 존재하였음이 분명한 것이다. 이 영원의 나라는 매헌을
용기 있고 대담하며 위대한 구국의 결단을 결행, 그리고 고요히 죽음을 마주하게 하는
초월성을 지니게 한 원동력이었다. 매헌은 결국 평화와 자유를 갈구하는 민중의 갈망
에 대하여 온몸과 영혼으로 응답한 이 땅의 동학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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