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06 - 월간 대한사랑 7.8월호 통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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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하는 남자현(왼쪽)에 아들 김성삼, 남자현 가족사진 ©국사편찬위원회
오른쪽에 손자 김시련이 보인다
가족을 위한 길을 선택하다
남자현은 1872년 임신 12월 7일 경상북도 영양군 석보면(石保面)에서 아버지
남정한(南珽漢)과 어머니 진성이씨 사이에서 1남 3녀 가운데 막내딸로 태어났다.
본관은 영양(英陽)으로, 아버지에게 가르침을 받아 어릴 때부터 품성이 단정하고
총명하여, 한문과 한글, 사서(四書)를 독파하고 한시를 지었다고 한다. 부친은 자
신의 제자 중 가장 아끼던 제자 의성 김씨 김영주(金永周)를 사위로 맞이하였다. 남
자현과는 11살 위로 생각이 반듯하고 처신이 분명하여 주위의 기대를 받던 이였
다.
1895(을사)년에 경복궁을 난입한 일본 놈들에 의해 명성황후가 살해되는 만
행이 벌어졌다. 국모보수(國母報讐, 국모의 원수를 갚다)! 김영주는 의병을 일으켰고,
1896년 여름 7월 11일 진보군 흥구동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그가 남긴 것은 피
묻은 군복과 유복자 김성삼이었다. 남자현은 바로 모든 걸 버리고 적과 싸우러
나서려 했지만, 봉양해야 할 시어머니와 건사해야 할 자식이 있었다. 성심으로 3
대 독자를 키우고, 상심한 시어머니를 잘 봉양하여, 효부상을 받기도 하였다.
원수를 갚아야 한다
그러나 나라를 잃고 남편을 잃은 남자현은 원수를 갚기로 하였다. 1905년 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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