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3 - 월간 대한사랑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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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06
기준점이 되는 동방 통치자 동후는 과연 누구일까?
‘동후’를 통해 밝혀진 4천 년 전 단군조선의 실존
요임금과 순임금의 활동 시기는 동방의 단군조선 시기의 초대 단군과 부루 태자
의 시기와 동일하다. 기록상으로도, 고고학적으로 요·순임금 시기는 단군조선 초
기 역사와 홍산문화 후기의 하가점하층문화 시기와 일치한다. 『태백일사(太白逸史)』
「삼한관경본기(三韓管境本紀)」 ‘번한세가 상(番韓世家 上)’에는 『서경』에 기록된 동후의
실체를 명확히 밝혀주고 있다.
단군은 태자 부루를 도산(塗山)에 파견하였다. 부루태자가 중간에 낭 야(琅耶, 산
동성지역)에 들렀는데, 그때 순이 직접 사악을 거느리고 조근(朝覲)하였다. 도산에
도착한 태자 부루는 순의 사공(司空)인 우(禹)에게 오행치수법을 전수하여 물을
다스리게 하였는데, 낭야성(琅耶城)에 그 감독기관 감우수(監虞所)을 설치하였다.
이후 5년마다 진국(辰國) 천제지자(天帝之子)가 순행하였는데, 그때 순이 네 번 조
근(朝覲)했다.
이것이 『서경』의 사근동후(肆覲東后) 실체이다.
『서경』에 기록된 순임금과 동후의 만남인 근례 기록은 중화사관 속에서 오랫동
안 왜곡되어 그 실체를 드러나지 못했던 단군조선의 ‘동후(東后)’의 존재와 기록에
등장하는 천문과 도량형, 의례문화를 통해 고대 동북아의 문화를 살필 수 있는 결
정적 사료임이 증명되는 순간이다. 이로써 이 기록은 “단군의 위격과 조선문명 수
준”을 증거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사료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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