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8 - 월간 대한사랑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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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고 했는데 과연 몇 대 단군일까? 할 바다. 그러나 <강동 단군릉 또는 강동
단군묘>에 관한 내용은 『조선왕조실록』
이에 대해서 『환단고기』는 정확한 기록
을 보나 여러 다른 문헌을 보나, 실제로
을 제시하고 있다. 『단군세기』에는 “(BC
단군릉이 존재했던 것은 확실한 만큼 이
2092년) 7월 구을단군이 남쪽으로 순수
조차 부정해서는 안 될 것이다.
하여 풍류강을 건너 송양(松壤)에 이르러
병을 얻어 곧 붕어하시니 대박산에 묻히 지금 강단사학계는 단군릉이나 단군의 존
셨다.(七月 帝南巡 歷風流江 到松壤 得疾 재 자체를 완전히 부정하고 있다. “북한이
尋崩 葬于大博山)” 라고 하여 대박산에 묻 왜 그처럼 황당한 주장을 하는지 모르겠
힌 단군이 5대 구을단군임을 분명히 기록하 다”, “북한이 주체사상을 너무 앞세우다
고 있다. 보니 넘지 말아야할 선을 넘은 것 같다”
고 하면서 북한의 단군릉 발굴 보고가 조
북한의 단군릉의 주인공은 작된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적지 않
5대 구을단군 았다고 한다.
북한은 평양 ‘단군릉’에서 출토된 사람 하지만 『조선왕조실록』에 나오는 여러
뼈에 대해 ‘전자 상자성 공명법’이라는 방 임금들이 강동 단군릉에 대한 제사와 예
식을 적용해 서기전 3000년께 조성된 단 우에 신경 쓰고 여러 조치를 취하는 내용
군의 무덤이 확실하다고 발표했다. 물론 들이 확실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단군릉
5천년 전 단군무덤이라는 자체는 말이 에 무관심하고 의도적으로 회피하는 것
안 된다. 잘못된 측정일 수 있다. 초대 단 은 잘못된 태도임에 분명하다. 단군은 신
군왕검의 연대로 보아도 그보다 수백 년 화로 남아야 하는데 그 실체가 있다면 그
이 앞선 연대측정이다. 게다가 『환단고 들 강단사학의 역사관으로는 그동안의
기』 기록으로 보아 발굴된 단군무덤이 초 논문을 폐기해야 하는 곤란한 상황이라
대 단군이 아니라 5대 단군이라고 한다면 서가 아닐까 사료된다. 하지만 이런 폐단
북한의 측정치는 1천 년이나 앞선 연대가 과 자신들의 편협한 이론의 고수로 인해
된다. 서 대한민국 국민들이 뿌리와 조상을 허
북한이 측정치를 높였다거나 어떤 정치 구로 보고 잊어버려야 한단 말인가? 북한
적 의도를 가지고 단군릉을 조성하였는 의 조작과 과대포장도 문제이지만 지금
지는 북한과 남한의 학계가 재조사해야 학계의 무관심과 무시 작전은 더 큰 직무
유기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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