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8 - 월간 대한사랑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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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천여 년간 풀리지 않았던 의문의 인물,                   은 수천 년간 한중의 학자들은 모두 ‘동쪽

               ‘동후(東后)’                                 의 제후’로 번역했다. 그런데 제후 후(侯)를
                 순(舜)임금이 요(堯)임금을 대신하여 섭정                사용하여 ‘동후(東侯)’라고 했다면 그냥 순

               을 시작하면서 동서남북 순수(巡狩)를 행하                  임금이 동쪽 제후를 만났다고 했으면 시
               는데, 태산에 이르러 제사 지내고 차례로                   원하게 해결되었을 것을, ‘동후(東后)’라고

               산천에 제사 지냈다. 그리고 가장 먼저 동                  남겼기에 후대의 사가들은 이 문제를 해
               쪽으로 이동하여 한 인물을 만난다. 『서                   결하기 위해 별의별 내용으로 합리화의
               경』은 이렇게 기록하였다.                           논리를 개발해야 했다. 이게 무슨 말인가?

                                                        『서경』을 직접 읽어 보면 『서경』의 모든
                肆覲東后協時月 正日 同律度量衡 修五                     기록에 등장하는 인물에 붙인 “후(后)”는

                禮 五玉三帛二生一死贄 如五器 卒乃復                     요•순•하•상•주 시기의 왕과 동격 인물 혹
                         -『서경(書經)』「우서(虞書) 순전(舜典) 」      은 천자를 지칭하는 왕들에게 붙인 용어

                                                        이기 때문이다. 왕 아래의 제후(侯)에게 사
                 기록에 등장하는 순이 제일 먼저 달려                   용하는 용어가 아닌 것이다.

               가 만났던 인물은 “동후(東后)”라는 인물이                  이 부분까지 정리를 하면 순이 동쪽으
               었다. 요임금을 대신하는 순이 직접 순수                   로 직접 가서 만난 인물은 ‘순임금이 꼭
               하면서 처음 만나는 과정에 특이한 용어                    만나기를 학수고대한 인물이며, 요임금과

               를 사용해서 기록으로 남겼다. 첫 번째는                   순임금의 위 레벨 인물로 동방의 임금’이
               ‘사(肆)’로 『서경』에서는 ‘사류우상제(肆類                란 의미가 있다. 그렇기에 사마천과 수많

               于上帝)’의 예와 같이 ‘드디어, 마침내’의 의               은 중원의 사가들은 중원의 고대 천자의
               미로 아주 공경의 대상에 대해 사용한 용                   상징인 요임금과 순임금이 만난 그 위 레
               어이고, 두 번째가 ‘근(覲)’이란 용어로 아                벨의 인물 ’동후‘란 인물을 어떻게 처리해

               랫사람이 윗사람을 뵙는 ‘하현상(下見上)’                  야 할지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을 나타내며 근현(覲見)· 근친(覲親)·근참(覲
               參) 등의 의미로 사용된다. 신성시하는 대                  중원 역사서에는 동시대 동방의 단군조
               상에 사용되기도 하는데, 최남선의 백두                    선을 기록하지 않았을까?

               산 답사기 제목인 『백두산 근참기(覲參記)』
                                                          중원의 초기 국가 임금인 당요(唐堯)와
               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우순(虞舜), 하우(夏禹)의 시대는『삼국유사(三
                 그리고 세 번째로 순임금이 만난 인물
                                                        國遺事)』, 『세종실록지리지』 <평양부조(平壤
               은 ‘동후(東后)’라고 기록하였는데, 이 구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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