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0 - 월간 대한사랑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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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동방으로 순수(巡守)할 때에 순은 동 누천년 간 의도적으로 오역되어 온 『서
후를 근(覲)한 것이며 다른 서남북(西南北)의 경』의 이 구절은 중원의 왕인 순임금이 동
순수(巡守)는 산천에 제사 올리는 것이 그 쪽 제후(들)을 만나서 제후들에게 일일이
목적이었다. 책력과 도량형, 예법을 가르치는 모습으
그렇기에 이 역사적 구절은 의도적으로 로 번역되어 이상한 왕(천자)의 모습을 만
오역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동안의 이 구 들어 내었다. 중원의 왕인 순임금이 주기
절에 대한 번역된 사례를 살펴보면 아래 적으로 동서남북으로 다니면서 매번 이렇
와 같다. 게 했다는 이상한 중원천자 상인 것이다.
드디어 드러나는 동후의 실체
歲二月 東巡守 至于岱宗 柴 望秩于山川 肆覲東后
하지만 누천년의 역사 속 수 많은 사가
1 協時月 正日 책력 조율
들에 의해 자행된 오역 속에도 역사적 사
2 同律度量衡 도량형 통일 실은 영원히 숨길 수가 없었다. 역사적 사
실을 밝힐 수 있는 단서는 바로 고대 의례
3 修五禮 오례
(儀禮)였다. 중원의 역사 속에 집대성된 고
4 五玉 三帛 二生 一死 贄 폐백
대 봉건제도의 의례는 『주례(周禮)』, 『의례
5 如五器 卒乃復 예식 후 (儀禮)』, 『예기(禮記)』에 기록되어 있다. 『서
경』의 기록은 당요(唐堯)부터 중원의 초기
역사를 구성하는 제왕(帝王)의 기록으로 주
이해 이월에는 (순임금이) 동쪽으로 순 변국에 대한 기록이 서술되어 있다. 중원
행하시어 태산에 이르러 제사 지내고 의 초기 역사는 봉건제도의 틀을 유지하
차례로 산천에 제사 지내고, 동쪽 제 고 있었기에 빈례(賓禮)는 제후가 임금을
후(들)를 만나 계절·월·일의 역(曆)을 바 뵙는 예인 근례(覲禮)의 형태로써 『서경』에
로 잡으셨고, 악률과 도량형을 통일하 는 이 기록이 남겨져 있음을 주목해야 한
시고, 오례, 다섯 가지 홀, 세 가지 비 다. 바로 ‘사근동후(肆覲東后)’ 속의 용어인
단, 두 가지 산짐승, 한 가지 죽은 짐 ‘근(覲)’이다. 도대체 이 ‘근(覲)’은 고대 중
승, 그리고 일반인의 포물의 제도를 원 봉건제도의 의례가 집대성되어 있는
정리하셨다. 다섯 가지 홀만을 끝난 『주례(周禮)』, 『의례(儀禮)』, 『예기(禮記)』에는
뒤 되돌려 주셨다. 어떻게 기록해 놓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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