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82 - 월간 대한사랑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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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사 동영상의 같은 점은 한반도 북부가 한(漢)나라와 위(魏)나라의 영토로 표기

                되었다는 것이다. 한국사학계가 이럴 수밖에 없는 것은 한나라의 낙랑군에 대한
                처리문제 때문이다.

                  대한민국 국민들은 교과서를 통해 한나라가 낙랑군을 평양 중심으로 설치하
                였고, 313년 고구려 미천왕시기에 멸망시켰다고 배웠다. 하지만 최근에는 낙랑

                군 멸망이 사실무근임이 밝혀져 ‘한반도 내에서 낙랑군 축출’로 기술하여 가르치
                고 있다.
                  중국학계는 이 주장을 100% 활용하여 한반도 북부 속국론을 완성하여 국정

                교과서에 기술하였다. 한국인과 국내 역사관련 학자들도 이 부분에 대한 정확한
                지식이 없기에 대부분 낙랑군은 한나라의 행정구역으로만 인식하고 있는 실정이

                다. 후한(後漢)은 서기 220년에 멸망하였다. 한 제국의 멸망이후 고구려 미천왕에
                의해 313년에 한반도에서 낙랑군을 축출될 때까지 낙랑군이 이후에 어떻게 되

                었는지에 대해 그동안 한국학계는 다루지 않았다. 이 부분이 동북공정논리로 한
                국사의 뒷덜미를 잡을 줄을 판단하지 못했던지 이 정도로 중국이 논리를 제시할

                줄은 짐작 못했을 것으로 판단된다.


                  중국사에서 낙랑군의 역사는 사료에 기록된 바 후한의 멸망 이후 위(魏)나라의

                행정구역으로 흡수되어 그 영역은 계승되었으며, 위나라에 이어 진(晉)나라의 행
                정구역으로 또한 흡수되었다. 즉 낙랑군 행정구역은 한나라에만 그치는 것이 아

                니라 위(魏)와 진(晉)의 영토로 그대로 흡수되었다는 의미이다. 역사적 사실로 말
                한다면 낙랑군은 한-위-진의 영토인 것이다. 이 논리대로라면 한반도 북부는

                420년간 한·위·진의 영토가 되는 것이다. 이것이 중국 국정교과서의 한국사이며,
                각종 고대 동북아시아 역사지도집의 핵심 내용이다.



                3)『부산시사』는 한 발 더 나서서 완전히 중국 국정교과서 논리를 수용했다.

                  이번 『부산시사』에서는 ‘고구려의 서안평(西安平)공격’을 기술하면서 중국 본토
                의 진(晉)과 한반도 북부의 낙랑군, 대방군을 기술하였다. 즉 한반도 북부를 진(晉)

                나라의 영역이었다고 본 것이다. 이로서 한반도 북부 역사는 중국인 위만에 이어
                한·위·진이 다스린 중국 고대국가의 속국임을 『부산시사』에서 최초로 인정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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