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5 - 월간 대한사랑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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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진흥왕 때 솔거가 꿈에 나타난 신인단군(神人檀君)을 그린 단군어진
(檀君御眞)이 유명했다. 고려 이규보는 ‘고개 밖 집집마다 모신 단군할아
버지의 상은 당년에 절반은 명공이 그린 것이었네.’ 라고 해서 집집마다
단군의 천진(天眞. 단군의 어진을 말함)을 모셨다.
신라 때 솔거는 그림 배우기를 소원하여 진심으로 기도하였다. 그러자 꿈에 단
군이 나타나 신필(神筆)을 주었다고 한다. 그 뒤 화가로 대성한 솔거는 단군의 은
혜에 감격하여 단군의 어진을 1000여장 이상을 그려 일반 사람들이 가정에서 모
시도록 나누어 주었다고 한다. 1910년 3월 15일 한밤중에 강원도 명주군 석병
산에 살고 있다는 고상식이라는 분이 나철을 찾아왔다. 그는 누런 비단에 싼 오
래된 단군 영정을 주면서 “우리 집에서 대대로 내려온 솔거의 유일본이오.”라고
하였다. 이를 저본으로 나철은 지운영(池雲英 1852~1935. 지석영의 형)에게 모사하게
하여 대종교의 표준영정으로 봉안하였다. 이 영정의 특징은 흰옷을 입고 두 손을
맞잡은 채 정면을 보고 있는데, 어깨
위에 버들잎 같은 길쭉한 나뭇잎을 드
리웠고 허리에도 박달나무 잎 같은 널
찍한 나뭇잎이 둘러져 있다.
일제 강점기 때 단군의 어진은 독
립운동가들에게 애국심을 용솟음
치게 하는 성물(聖物)이었다. 신규식
(1879~1922) 선생은 매일 아침마다 단
군의 영정에 청수를 올리고 기도한 후
밖에 나가 독립운동을 하였다고 하니
이러한 독립운동가들의 정신을 우리
후손들은 본받아야 할 것이다.
솔거본 단군영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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