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5 - 월간 대한사랑 5월호
P. 35

2024. 05






                              신라 진흥왕 때 솔거가 꿈에 나타난 신인단군(神人檀君)을 그린 단군어진
                              (檀君御眞)이 유명했다. 고려 이규보는 ‘고개 밖 집집마다 모신 단군할아

                              버지의 상은 당년에 절반은 명공이 그린 것이었네.’ 라고 해서 집집마다
                              단군의 천진(天眞. 단군의 어진을 말함)을 모셨다.



                            신라 때 솔거는 그림 배우기를 소원하여 진심으로 기도하였다. 그러자 꿈에 단

                          군이 나타나 신필(神筆)을 주었다고 한다. 그 뒤 화가로 대성한 솔거는 단군의 은
                          혜에 감격하여 단군의 어진을 1000여장 이상을 그려 일반 사람들이 가정에서 모
                          시도록 나누어 주었다고 한다. 1910년 3월 15일 한밤중에 강원도 명주군 석병

                          산에 살고 있다는 고상식이라는 분이 나철을 찾아왔다. 그는 누런 비단에 싼 오
                          래된 단군 영정을 주면서 “우리 집에서 대대로 내려온 솔거의 유일본이오.”라고

                          하였다. 이를 저본으로 나철은 지운영(池雲英 1852~1935. 지석영의 형)에게 모사하게
                          하여 대종교의 표준영정으로 봉안하였다. 이 영정의 특징은 흰옷을 입고 두 손을

                          맞잡은 채 정면을 보고 있는데, 어깨
                          위에 버들잎 같은 길쭉한 나뭇잎을 드

                          리웠고 허리에도 박달나무 잎 같은 널
                          찍한 나뭇잎이 둘러져 있다.
                            일제 강점기 때 단군의 어진은 독

                          립운동가들에게  애국심을  용솟음
                          치게 하는 성물(聖物)이었다. 신규식

                          (1879~1922) 선생은 매일 아침마다 단
                          군의 영정에 청수를 올리고 기도한 후
                          밖에 나가 독립운동을 하였다고 하니

                          이러한 독립운동가들의 정신을 우리
                          후손들은 본받아야 할 것이다.






                                                                           솔거본 단군영정




                                                                                                  33




       월간대한사랑_6호_본문.indd   33                                                                 2024-04-29   오후 12:53:49
   30   31   32   33   34   35   36   37   38   39   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