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7 - 월간 대한사랑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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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조선사가 우리 역사 서술에서 공백 주장은 이것이 서한 시기 염철론(鹽鐵
으로 남았다는 현실이다. 論)에서 말하는 “하나라 때 사용했던
다행히 1980년대 세상에 소개된 현패(玄貝)”라고 소개하였는데, 이 납돈
『환단고기』 의 「단군세기」에는 47명의 (鉛貝)에 대한 더 명확한 기록이 『단군
단군이 통치한 고조선 왕조 역사가 편 세기』 <4대 오사구 단군조>에 기록되
년체로 기술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각 어 있다. 동아시아 최초의 금속화폐인
왕조별로 많은 정보를 수록하고 있음 납돈이 출토된 대전자유적(1971년 발
이 세상에 알려졌다. 그럼에도 또 다시 굴)에서 우리는 『단군세기』 기록(1911
한국 사학계에서는 『단군세기』에 대한 년)의 사료적 가치를 확인할 수 있게
엄밀한 검증작업도 시도하지 않은 채 된 것이다.
공식적인 사료로 인정하지 않는 실정
이었다. 화폐의 기원 _ 개오지 조개
그러나 중국 요서지역에 대한 고고 동아시아 화폐 기원의 맨 첫머리에
학 성과가 계속되고 북한학자들에 의 는 항상 조개 화폐가 있다. 그런데 이
해서 고조선 경제에 대한 연구가 국내 조개가 어떻게 화폐로 사용되었는지
에 알려지면서, 중국의 여러 문헌에 고 에 대한 설명을 찾아보기는 힘들다. 대
조선의 경제 수준을 알게 하는 기록이 개 중국에서 화폐로써 사용되었다고
꽤 많다는 사실 및 요서지역 유적 발 하는 등의 설명만 있을 뿐이다. 그런
굴보고서가 고조선을 이해할 수 있는 데 화폐로 사용된 조개는 전 세계적으
자료를 제공해 주는 근거가 되었다. 로 개오지 조개(카우리조개, cowries shells)
이들 중 대표적인 것이 1971년 발굴된 만을 의미하며, 수백 종의 개오지 조개
대전자유적인데, 이 유적은 하가점하 종 중에서도 크기가 균일하고 단단하
층문화를 이해하는데 가장 완전한 자 며 심미성까지 가진 단 몇 종만이 화폐
료를 제공한다고 평가되는 유적이다. 대용품으로 사용되었다. 화폐라는 것
특히 이 유적에서는 납으로 만든 조개 은 거래를 원활히 하기 위한 매개물로
화폐가 출토되어 동아시아의 금속화 가치척도의 기능, 지급수단 가능, 가
폐시기를 적어도 서기전 16세기로 끌 치 저장 가능, 교환 기능이 있어야 한
어올리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중국의 다. 대개 귀중품으로 여겨지던 물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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