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86 - 월간 대한사랑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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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산도 제승당



         가 “우리는 살마군(사쓰마)이다. 이순신을 악귀처럼 달려들어 물어뜯을 것이다”라고
         할 만큼 잔인하고 용맹함을 자랑할 정도였다.

           이들은 임진 정유년 두 번에 걸쳐 10,000명씩을 이끌고 참전하여 칠천량 에서
                                                                             5)
         원균의 조선 수군을 전멸시킨 주력이었고, 경상도 지역을 쑥대밭을 만들기도 했다.

                                                                     7)
         정유재란 때는 코 베기 에도 앞장섰으며, 심당길 등 도자기 기술자 들을 제일 많이
                             6)
          끌고 갈 정도로 악명이 높다. 이순신 장군을 전사하게 만든 장본인이기도 하다.
           임진왜란이 끝나고 대부분의 일본 다이묘들이 명멸을 거듭했고 유독 시마즈 가문
         의 세력이 많이 위축되었다고는 하지만 현재까지도 살아남아 ‘시마즈 공업’이라는

         회사를 운영하며 가고시마 지역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세하고 있다.






          5) 칠천량 전투ㅣ1597년 8월 정유재란시에 거제앞바다 칠천량에서 벌어진 해전. 이순신장군이 한양에 압송되어 있을 때 원
            균이 수군통제사가 되어 싸웠으나, 조선의 수군은 12척의 배만 남긴 채 궤멸적 타격을 입음. 이 패배로 조선은 남해안 제
            해권과 전라도가 왜군에게 장악 당해 막대한 피해를 입게 됨.
          6)정유재란은 코 베기 전쟁ㅣ임진왜란 주요 패인을 전라도를 점령 못한 것과 민초들의 의병으로 생각한 도요토미 히데요시
            는 1597년 1월 다시 전쟁을 일으켜(정유재란) 전쟁이 목적이 아니라 오직 조선의 백성들을 다 죽여서라도 전라도에 대한
            앙심을 풀고자 하는 생각으로 재차 침략했으나 왜군은 임진년과 달리 싸울 의지가 별로 없어서 코를 베어오라는 천인공노
            할 명을 내렸다. “사람의 귀는 둘이고 코는 하나다. 병사 한 명당 코 한 되씩 베어 오라”는 명을 받은 왜군은 전공戰功을 부
            풀리기 위해 무자비하게 도륙하고 산 사람까지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코를 베었다. 1년 이상 자행된 이 만행으로 교토의
            코무덤에 20만개 이상이 매장되었다고 하니 인류역사상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참혹했다. 그래서 정유재란을
            코 베기 전쟁이라고도 한다. 耳鼻; 애비(눈감으면 코 베어 간다)라는 말이 여기서 유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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