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87 - 월간 대한사랑 3월
P. 87

2024. 03


                      5) 전쟁 이후

                        일본은 임진왜란 이후 패권전쟁에서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가 승리하여 에도

                      시대가 열리면서 260여 년간 뛰어난 경제적 발전과 도시화와 문화적 발전이 이루어
                      진다. 비록 에도막부는 쇄국정책으로 급격한 현대화의 물결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
                      하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지만 일본 역사상 최고의 황금기였다고 볼 수 있다. 이

                      후 일본은 천황중심의 중앙집권을 복구한 명치(메이지)유신(1868년)을 통해 30여 년간
                      서양의 부강지술을 배워 근대화에 성공하고 이것을 기반으로 한반도를 식민지화 하

                      는데 성공한다. 1차 정한론이라고 할 수 있는 임진왜란이 끝나고 300여 년 후의 일
                      이다.



                      6) 사쓰마 번과 조슈 번 그리고 명치유신

                        도쿠가와 막부(에도시대)에 대항했던 시마즈의 사쓰마 번과 조슈 번이 합작하여
                      266년간 이어진 에도막부정권 을 타도함으로써(왕정복고) 근대화를 앞당겨 조선보
                                                 8)
                      다 100년을 앞서가게 된 계기를 만들게 된다. 사쓰마 번과 조슈 번은 일본이 제국주

                      의로 아시아의 강대국이 되어 태평양 전쟁을 일으켜 전 세계를 전쟁의 소용돌이로
                      몰아가고 아시아를 유린한 명치유신의 핵심 진원지이며, 한반도를 정벌하자는 정한

                      론의 진원지라고 볼 수 있다. 사쓰마 번은 일본 역사 내내 일본 해군을 대표하는 지
                      역이고, 조슈 번은 육군을 대표할 정도로 군사력이 강한 지역이다.

                        사쓰마의 번주 시마즈 가문은 메이지유신 핵심그룹의 배후로 유신 3걸  중 이 지
                                                                                      9)
                      역 출신인 사이고 다카모리와 오쿠보 도시미치를 적극 후원했다. 나머지 한 명인 기

                      도 다카요시는 조슈 번 출신이다.






                      7)도공 심당길 : 1598년 조선에서 끌려간 도자기공. 남원에서 사쓰마의 번주 시마즈 요시히로에게 끌려가서 일본 도자기
                        문화를 꽃피웠다. 12대 후손인 심수관 이후 역대 도예가를 심수관이라 부른다. 현재도 사쓰마야키라고 하는 도자기를 만
                        들어 일본도예를 주도하였다. 사가현 아리타의 이삼평과 더불어 일본도자기 양대 산맥을 이루고 있다. 임진왜란은 도자기
                        전쟁으로 불릴 만큼 많은 도공들을 끌고 갔다.
                      8) 에도막부정권ㅣ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사망으로 7년 임진왜란이 끝나고 일본 통일전쟁인 세키가하라 전투(1600년)에서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승리함으로써 에도(도쿄)를 중심으로 막부(쇼군)시대를 열어 명치유신까지 265년 동안 일본을 통치
                        한 무사정권.
                      9)메이지明治유신 유신3걸 : 유신의 수많은 인물 중 주역인 사이고 다카모리, 오쿠보 도시미치, 기도 다카요시 등 3명을 일
                        컫는다. 사쓰마 번 출신의 사이고와 오쿠보는 정한론征韓論에 대한 이견으로 전쟁을 벌여(1877년 세이난 전쟁) 사이고가
                        패함으로써 할복을 하게 되고 8개월 뒤 오쿠보는 암살당했다. 기도 다카요시는 세이난 전쟁 와중인 43살에 병사했다.



                                                                                              87
   82   83   84   85   86   87   88   89   90   91   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