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80 - 월간 대한사랑 3월
P. 80

이 이야기는 1099년 제1차 십자군 원정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예루살
              렘에서 로마 가톨릭교회의 기사단이 창설되어 성지와 순례자들의 보호를 꾀하는

              데, 1291년 팔레스타인에서 유럽 기독교 세력이 축출되면서 이 기사단도 쫓겨납
              니다. 이 기사단은 키프로스를 거쳐 튀르키예 아래 위치한 ‘로도스’ 섬에 이르러

              로도스 기사단으로 불리게 되지만, 1522년 오스만 제국과 전쟁에서 로도스를 잃
              고 떠돌다가 ‘몰타’라는 섬으로 이주합니다. 당시 몰타의 주인 카를5세는 기사단

              에게 그 섬을 허락하면서 대신 한가지 조건을 붙였습니다. 매년 공물을 바치라는
              요구였습니다. 놀랍게도 그 공물은 사냥 매 몇 마리였습니다. 이렇게 기사단은 오
              랜 떠돌이 생활을 마치고 ‘몰타 기사단’으로 정착하게 되어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

              습니다. 몰타는 지중해 해상교통의 기점이었기에 북아프리카 해적들과 오스만 세
              력 견제 역할을 톡톡히 하게 됩니다.

                중앙아시아부터 중동과 유럽 일부를 지배했던 이슬람 제국들도 일찍이 매사냥
              을 즐겼는데,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된 작은 상아 상자(Ivory pyxis)를 통해 이슬람 세
              계에서 사랑받았던 매사냥을 엿볼 수 있습니다. 일명 ‘칼리프의 상아상자’로 불리

              는 작은 함으로, 스페인 코르도바에서 발견되었습니다. 8세기 스페인 지역에 진
              출한 이슬람 일족들과 매에 얽힌 이야기가 조각되었습니다. 둥지에서 새 매의 알

              을 채취하고, 알을 부화시켜 키운 매와 같이 사냥을 하는 내용이 섬세하게 조각
              되어 이베리아 반도에 진출한 사람들의 그 당시 매사냥 문화를 짐작케 합니다.


















                                              칼리프의 상아 상자(Al-Mughira's pyxis)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이 소장한 40개 걸작 중 하나로 꼽힌다. 옆
                                              면에는 매의 알을 낚아채는 모습이, 뚜껑에는 한 인물 팔뚝에 매
                                              가 앉아있는 모습이 조각되어 있다. (사진=오동석 제공)

                                              756년 스페인 코르도바에 우마야드(Umayyad) 일족이 처음 도
                                              착한 것을 기념하는 상징물로, 칼리프 ‘Abd al-Rahman III’의
                                              막내아들을 위해 만들어졌다. 압바스 왕조의 경쟁자들은 우마야
                                              드 일족을 “쿠라이시의 매”라 불렀다.



          80
   75   76   77   78   79   80   81   82   83   84   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