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71 - 월간 대한사랑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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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03
계사년(1233) 겨울 10월에 고려(高麗)에서 모든 무리가 와서 서경(西京)을 공격하여
그 민(民)을 도륙하고 홍대선(洪大宣)을 동쪽에서 위협하였다. 홍복원(洪福源)이 마침
내 불러 모은 북계의 무리들을 모두 거느리고 와서 (원나라에) 귀부하여 요양(遼陽)
과 심양(瀋陽) 사이에 거처하니, (원나라) 황제가 그 충성을 가상하게 여겼다. 9)
사료에서 보듯이 서경을 공격하니 고려에 반기를 든 홍대선 이 원나라에
10)
귀속되기를 요청하면서 요양(遼陽)과 심양(瀋陽) 사이에 거처를 정했다는 내용
이 있다. 『원사』의 위 자료에서는 서경과 요양을 별개의 장소로 설명하고 있
다. 그런데 다른 자료에서는 요양인 평양 장안성을 서경이라고 하는 사료도
있다. 이같이 서경의 지명을 다른 위치로 설명하는 것은 고려 초기에는 요양
이 서경이었는데, 요, 금을 거쳐 원나라 때는 요양이 원나라 영역이 되면서 서
경이 동쪽으로 밀려난 것이라 본다. 홍대선 같은 요동 지역의 성주들이 고려
를 향해 반란을 자주 일으킨 것도 이 지역에 대한 고려의 세력이 점차로 약해
지고 통제력을 잃고 있다는 사례가 된다.
지금까지 고려의 압록강이 현재 한반도 압록강이 아니라는 것을 여러 가지
사료를 통해서 알아보았다. 여러 사서에서 고구려, 고려의 압록강이 요하라
는 것을 토대로 사실적인 강동 6주
를 그려보면 다음 그림과 같다.
우리 대한사랑이 해야 할 역사광
복의 과업은 교과서에 있는 잘못된
역사의 왜곡을 바로잡고 우리 후손
들에게 올바른 역사 진실을 알리는
것이다. 다음 원고에는 사료에서 설
명하는 강동 6주의 사실적인 위치
두 개의 압록강과 강동 6주
를 설명하겠다.
10) 『元史』卷59 志11 地理2
瀋陽路, 本挹婁故地, 渤海大氏建定理府, 都督瀋·定二州, 此爲瀋州地. 契丹爲興遼軍, 金爲昭德軍,
又更顯德軍, 後皆燬於兵火. 元初平遼東, 高麗國麟州神騎都領洪福源率西京·都護·龜州四十餘城來降,
各立鎮守司, 設官以撫其民. 後高麗復叛, 洪福源引衆來歸, 授高麗軍民萬戶, 徙降民散居遼陽瀋州,
初創城郭, 置司存, 僑治遼陽故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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