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70 - 월간 대한사랑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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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양 중심으로 태자하가 흐른다.
               북쪽에 산이 있고 강으로 둘러 쌓인 어느 곳에 성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양은 ‘배산임수(背山臨水)’라고 하여 산을 등지고 강을 바라보는 지역으로 적의

            공격으로부터 수비하기가 쉬운 지역이다.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압록은 경계를 나누는 강의 의미로 거란과 고려의 국

            력에 의해 그 경계가 달라지기에 압록강, 압록수의 영역도 달라진다. 이같이
            고려의 서경도 위치가 달라질 수 있다. 서경을 ‘서쪽의 수도’란 보통명사로 본
            다면 지역이 달라질 수 있다. 요양인 평양 장안성이 서경이란 『원사』의 내용

              8)
            도 있지만, 시기에 따라 서경의 위치가 달라진 경우로서 요양과 서경을 같은
            위치가 아닌 다른 위치로 본 사료도 있다.





             8) 『元史』「地理志」 東寧路. 本高句驪平壤城, 亦曰長安城 (중략) 至王建, 以平壤為西京. 여기서 동녕로는 요
               양을 말한다. 요양이 동녕로인데 평양이면서 서경이라는 『元史』「지리지」 내용이다.
                 중국과 우리나라 학계에서는 지금의 요령성 요양을 요나라 동경 요양부로 본다. 그런데 거란의 동경에 대해
               『武經總要』에서는 두 군데로 설명하고 있다. “동경의 동쪽으로 의무려산이 있고 서쪽으로는 패주까지 2백
               리이며, 남쪽으로 금주까지 9십리이다.” 이 기록에 따르면 대릉하 서쪽인 현재의 의현이 거란의 동경으로
               추정된다. “동경은 요동 안시성이다. 성의 동쪽은 대요하(大遼河)이고 성의 서쪽은 소요하(小遼河)이다.”
               이 기록에 따르면 요하의 왼쪽에 위치한 어느 곳이 요나라의 동경이 된다. 고려 초기 서경은 요양이었다가
               이후 국력이나 국제관계에 따라 이동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9) 『元史』卷154 列傳41
                癸巳冬十月, 高麗悉衆來攻西京, 屠其民, 劫大宣以東. 福源遂盡以所招集北界之衆來歸, 處於遼陽·瀋陽之
               間, 帝嘉其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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