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86 - 국제학술문화제-천부경/국제 분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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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부경 분과
산대장으로 계연수 사후 단학회의 3대 회장, 이덕수는 최시흥을 이어 단학회 4대 회장이 되었다.
이유립의 주장을 제외하고는 그동안 확인되지 않았던 단학회의 법통이 최시흥, 이덕수로 계승된
내력을 계연수의 글을 통해서 확인 할 수 있게 되었다.
『광명장』으로 이름을 지어서 최시흥, 이덕수에게 주노니 다행히 혹여 이것으로 태백진교의 적
결로 삼는다면 선사께서 명령한 바를 거의 저버리지 않을 것이다.(名爲光明藏하고 以授崔時興
李德洙하니 幸或以此로 爲太白眞敎之的訣이면 則庶不負 先師之所符者耶아) 77)
5) 『환단고기』의 핵심인 제천사상이 『광명장』에서도 확인된다.
우리 환족의 옛 풍속은 하늘에 제사지내는 것을 근본으로 삼고
종족을 소중히 여기는 것을 정의로 삼아 조국의 전통이 파멸된 적이 없었다.(吾桓古俗이 以祭天
爲本하고 重族爲義하야 祖國傳統이 未嘗破滅이러니) 78)
「전문」의 첫 구절이 “吾桓古俗이 以祭天爲本하고”로 시작된다. 이는 『환단고기』 중 안함로의 『삼
성기』의 첫 구절인 “吾桓建國이 最古라”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민족이 광명을 숭상하는 환족桓族으
로 보는 맥과 일치한다.
‘以祭天爲本’은 『환단고기』 전체의 핵심인 제천사상을 잘 드러내는 문구로 보인다. 단학회의 3
대강령 79) 의 첫 번째인 삼신 상제님께 제사를 지내 근본을 갚는다는 사상을 그대로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단학회 강령綱領은 해학 이기가 1909년 1월1일에 지었다. 80)
‘未嘗破滅’에서 계연수는 왜 ‘조국의 전통이 파멸된 적이 없었다’는 표현을 했을까? 「전문」을 작
성한 시기는 1917년으로 나라는 분명 망한 일제강점기이다. 그런데 ‘未嘗破滅’이라는 표현은 계
연수가 1911년에 『환단고기』를 간행한 것과 무관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6) 『환단고기』의 역사관이 『광명장』과 일치한다.
5천 8백 년 동안 조국 최고의 영광과 가장 위대한 공적을(五千八百年祖國最高之榮光과 最大之
偉烈이) 81)
77) 계연수, 「前文」 중에서(계연수, 『光明藏』, 1917).
78) 계연수, 「前文」 중에서(계연수, 『光明藏』, 1917).
79) 「檀學會略史」, 《커발한》 14호(대전: 단단학회, 1968년 9월), 4면.
一, 祭天報本(三神님께 제사하여 근본을 갚는다.)
二, 敬祖興邦(조사를 공경하여 나라를 일으킨다.)
三, 弘道益衆(大道를 홍포하여 무리를 유익하게 한다.)
80) “十三年正月一日에 海鶴先生이 作檀學會綱領三章하고”, 李裕岦. 『대배달민족사』 1권(서울: 고려가, 1987), 38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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