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85 - 국제학술문화제-천부경/국제 분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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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연수의 『천부경』 이해 김철수, 전재우
한편 단단학회가 신뢰하는 성창호의 『해동인물지』는 1969년에 대전 회상사回想社에서 발행
되었다. 단단학회의 『커발한』은 1966년 10월 1일에 발행된 제7호부터 회상사에서 인쇄했다.
앞서 본대로 계연수의 기록은 『정신철학통편』과 《단탁》외에는 없었다. 『태백일사』와 『단군세
기』는 당시 『커발한』에만 그 내용이 소개되었다가 『해동인물지』에도 실렸다. 이로 볼 때 『해동
인물지』의 계연수 기록은 이유립이나 단단학회의 제공으로 보는게 타당하다. 72)
장신은 성창호의 『해동인물지』를 인쇄한 곳이 단단학회의 『커발한』이 인쇄한 곳과 같은 인쇄소
였기에 이유립이 성창호에게 자료를 주어서 『해동인물지』에 계연수의 자료를 게재하게 하였다는
억지주장을 한 것이다.
4) 단학회檀學會의 법통계승과 『광명장』
이유립은 단학회가 해학 이기에서 2대 계연수, 3대 최시흥, 4대 이덕수, 5대 이용담으로 전해왔
음을 주장하였다. 이러한 주장은 오직 이유립만이 전하였다. 73) 그러나 장신은 황당한 주장으로
이유립의 주장을 부정하고, 나아가 단학회의 독립운동 역사마저 없는 것으로 단정하고 있다.
단단학회[=태백교]를 발기하던 1965년까지는 계연수도, 단학회도 이유립의 머리 속에는 없었
다. 74)
연보에 따르면 이유립과 깊은 영향을 주고받은 단체는 단학회, 배달의숙, 삼육사, 신풍학원 등
이다. 이중 단학회와 배달의숙은 실체를 확인할 수 없다. 75)
계연수는 실존 인물이었으나 『천부경』을 발견한 도인 외에 알려진 정보가 없었다. 이유립은 계
연수를 이기와 연결시켜 단군관련 ‘고기古記’ 계승의 정통성을 만들었다. 그리고 이기가 조직하
고 계연수가 계승한 단학회를 통해 1920년대 전반기 남만주 일대의 무장독립운동을 사상으로
지도했다는 역사를 만들었다. 76)
장신의 주장을 따르면 이유립이 1965년 이후에 단학회를 독립운동 단체로 만들어 허구의 역사
를 만들었다는 정신병자 같은 논리를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광명장』에 따르면 계연수가 최시흥
崔時興(1889~1925)과 이덕수李德洙(1895~1940)에게 전수했다는 기록이 있다. 최시흥은 천마
72) 장신, 「유교청년 이유립과 『환단고기』」, 『역사문제연구』 39권(역사문제연구소, 2018), 183쪽.
73) 「檀學會略史」, 《커발한》 14호(대전: 단단학회, 1968년 9월), 5면; 「檀學會略史」④, 《커발한》 17호(대전: 단단학회,
1970년 3월), 5~6면; 「歷代檀學會職次一覽」, 《커발한》 47호(대전: 단단학회, 1975년 3월), 5~6면; 「커발한 重要小
祿」, 《커발한》 47호(대전: 단단학회, 1975년 3월), 7면.
74) 장신, 「이유립의 계연수 날조기(捏造記)」, 『역사와현실』 115(한국역사연구회, 2020.3), 412쪽.
75) 장신, 「유교청년 이유립과 『환단고기』」, 210쪽.
76) 장신, 「유교청년 이유립과 『환단고기』」, 2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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