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84 - 국제학술문화제-천부경/국제 분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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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부경 분과
방 불령선인 초토계획」으로 인해 만주지역의 우리 조상들은 ‘경신참변’이라는 엄청난 피해를 입었
다. ‘경신참변’의 또 다른 최대 피해는 어쩌면 ‘계연수’와 ‘단학회’로 볼 수 있다. 이때 계연수는 피살
되었으며, 배달의숙과 계연수의 미발표 원고 10여종과 소장도서 3천여 권이 불 속으로 사라졌다.
3) 해학 이기와 계연수의 스승과 제자관계
1897년 계연수는 이기를 스승으로 모셨으며 『환단고기』는 해학 이기의 감수를 거쳤다.
『환단고기』는 모두 해학 이기 선생의 감수를 거쳤고(桓檀古記는 悉經海鶴李先生之監修오)
(『환단고기』 「범례」) 68)
『환단고기』를 부정하는 주장 중에는 이유립이 고성이씨 집안의 유명한 해학 이기를 『환단고기』
와 연결시켰다는 해괴한 주장도 있다. 또 『해학유서海鶴遺書』에 계연수가 없기 때문에 계연수는
해학 이기의 제자가 아니다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이유립은 계연수를 이기와 연결시켜 단군관련 ‘고기古記’ 계승의 정통성을 만들었다. 그리고 이
기가 조직하고 계연수가 계승한 단학회를 통해 1920년대 전반기 남만주 일대의 무장독립운동
을 사상으로 지도했다는 역사를 만들었다. 69)
장신은 ‘이유립은 계연수를 이기와 연결시켜 단군관련 ‘고기古記’ 계승의 정통성을 만들었다’는
주장은 『광명장』의 내용을 보면 너무나 잘못된 것임을 확인할 수 있다.
나는 해학 선사의 유촉을 받고나서부터
오로지 고전을 모아서 편집(蒐輯)하는 것을 임무로 삼았으며(余自受海鶴先師之遺囑으로 專以
蒐輯古典爲務하며) 70)
계연수는 『광명장』에서 ‘해학 선사’ 71) 라고 말하고 있다. ‘선사先師’는 ‘돌아가신 스승’이란 뜻이
다. 계연수는 분명하게 해학 이기가 스승이었음을 밝혀주었다. 앞서 살펴본 성창호의 『해동인물
지』(1969)에서도 계연수를 ‘이기 문인李沂門人’으로 기록하고 있다. 장신은 『해동인물지』의 계연
수 기록에 대해 믿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68) 안경전 역주, 『환단고기』, 6~7쪽.
69) 장신, 「유교청년 이유립과 『환단고기』」, 211쪽.
70) 계연수, 「前文」 중에서(계연수, 『光明藏』, 1917).
71) 「桂延壽寄書」에서는 “제가 일찍이 스승님에게서 들으니(僕이 嘗聞之師하니)”라고 하여 스승이라고 언급 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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