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4 - 국제학술문화제-정신문화 분과
P. 44

정신문화 분과


                    한 경향이 있다.    52)



                   중국과 더 가깝고 더 친했던 부여와 달리 라이벌 의식에서인지 고구려에 대해서는 편파적인 평

                 가도 보이지만, 좋은 농지가 없는 고구려는 안정적 식량 공급원의 확보를 위해서라도 정복전쟁을
                 벌일 수밖에 없었고 그러다보니 더 공격적으로 비쳐졌을 것이다.                        53)  그럼에도 먹는 것을 아껴가면

                 서까지 궁전을 지어 제사를 지냈다는 것을 볼 때 고구려인들이 상무정신                          54) 과 영성(靈性)을 겸비했
                 음을 알 수 있다.     55)

                   하늘에 제사지내는 부여에 비해 고구려는 귀신과 영성과 사직에도 제사를 지내는 등                                56)  샤머니
                 즘의 풍습이 강했고 성(性)문화도 개방적이었던 것을 알 수 있다. 걸음걸이에서도 알 수 있듯이 고

                 구려인은 생명력이 충만한 건강한 사람들이었다. 역으로 중국인들은 고구려인에 비해 성문화도
                 보수적이고 활기가 떨어졌던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부여인과 고구려인에 대한 중국측 사서의

                 서술은 통상적으로 우리의 민족정서로 여겨져온 한(恨)이 우리의 상고시대에는 적용될 수 없는 후
                 대의 것임을 보여준다.        57)  저러한 굴절된 시각을 벗어던져야만 우리의 시원 형태인 부여인과 고구

                 려인의 세계를 올바로 이해할 수 있다.


                 52) 陳壽,   三國志  , 卷30, 「魏書」, <東夷傳>, 【高句麗條】, 其民喜歌舞 國中邑落 暮夜男女羣聚 相就歌戲 […] 其人絜淸自
                 喜 善藏釀 […] 行步皆走 以十月祭天 國中大會 名曰東盟 […] 其俗淫
                 고구려의 제사도 부여의 그것과 마찬가지로 음주가무가 동반된 축제의 성격을 띠었을 것이다.
                 53) 거기에는 고구려를 포함하는 유목민족에 대한 한족의 두려움도 한 몫 했을 것이다.
                 54) 고구려인은 힘이 센데다가 전투에도 익숙하였다.*
                 * 陳壽,   三國志  , 卷30, 「魏書」, <東夷傳>, 【高句麗條】, 國人有氣力 習戰鬭
                 55) 고구려의 상무정신은 영성에서 연원했을 것이다. 영성이 상무정신을 한층 강화시켰다고 할 수 있다. 고구려인들이
                 깨끗한 것을 좋아했다는   삼국지  의 기록도 그들이 구질구질한 필부가 아니라 솔선수범하고 탐욕 없는 분명한 사람들
                 이었다는 뜻으로 새길 수 있다.
                 56) 이 외에 수신(隧神),* 해의 신(日神), 가한신(可汗神), 기자신(箕子神)**을 섬겼다고 한다. 고구려 고분벽화에 해의
                 신과 나란히 그려진 달의 신(月神)도 섬김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한영우 교수는 가한신을 단군으로, 해의 신을 환인으로
                 해석한다(한영우 2021, 10쪽). 가한을 왕을 의미하는 칸의 음사(音寫)로 해석했을 때 가한신은 단군, 혹은 주몽일 것이
                 다. Ⅵ장에서 보겠지만 수신은 동굴의 신이므로 단군의 어머니인 웅녀나 주몽의 어머니인 유화부인으로 표상되는 흑신
                 일 것이다. 그러나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해의 신은 하반신이 용(혹은 뱀)인데다 마찬가지로 하반신이 용(혹은 뱀)인
                 달의 신과 커플로 그려졌다는 점에서 해의 신은 환인이라기보다는 복희라는 해석이 설득력이 있어 보이며, 그 경우
                 달의 신은 여와로 해석된다. 고분벽화에는 청룡, 백호, 주작, 현무의 사방신, 불의 신(축융?), 숫돌에다 무엇을 가는
                 신, 쇠망치질을 하는 신(치우?), 소의 머리를 한 농사의 신(신농?), 수레바퀴를 만드는 신(길광?) 등 다양한 신들의 모습
                 이 보인다.
                 * 陳壽,   三國志  , 卷30, 「魏書」, <東夷傳>, 【高句麗條】, 十月 國中大會 迎隧神還于國東上 祭之 置木隧于神坐
                 **   舊唐書  , 「東夷列傳」, <高句麗條>, 事靈星神日神可汗神箕子神
                 57) 그러한 점에서 김열규 교수가 집필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의 「한」 항목*은 시정과 보완을 요한다. 그는 한을
                 정치, 민간신앙, 속담, 설화, 민요, 판소리, 문학작품 등 다방면에서 짚어내고 있지만, 한이 한국인의 정서를 표현하는
                 용어가 된 것은 일제때 야나기 무네요시로부터였음(야나기 무네요시 1920)을 빠뜨리고 있다. 나라를 잃고 신음하던
                 조선의 모습에서 얻은 인상을 우리의 역사 전체에 소급시키는 야나기 무네요시의 추론은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고 있다.
                 그가 본 한의 정서는 유교의 나라였던 조선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점에서 유교이성비판은 한이라는 조선귀신을 몰아내
                 기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하다. 앞으로 보겠지만 우리의 민족정서는 한보다는 신명이다. 이승종 2022b 참조.
                 *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60943



                 44
   39   40   41   42   43   44   45   46   47   48   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