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5 - 국제학술문화제-정신문화 분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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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학문: 우리 정신의 철학적 복원  이승종



                   다음의 구절은 고구려인들의 높은 향학열과 심신수련의 실천을 잘 보여준다.



                    습속은 서적을 매우 좋아하여 문지기, 말먹이 따위의 (가장 미천한) 집에 이르기까지 각 거리마

                    다 큰 집을 지어 경당(扃堂)이라 부른다. 자제(子弟)들이 결혼할 때까지 밤낮으로 이곳에서 독
                    서와 활쏘기를 익히게 한다.         58)



                    사람들이 배우기를 좋아하여 가난한 마을이나 미천한 집안까지도 서로 힘써 배우므로, 길거리

                    마다 큼지막한 집을 지어 경당이라 부른다. 결혼하지 않은 자제들을 이곳에 보내어 글을 외고 활
                    쏘기를 익히게 한다.      59)



                   출세를 지향하는 조선의 선비나 한국인의 향학열에 비해 문지기, 말먹이, 가난하고 미천한 집안

                 까지도 배우기를 좋아했다는 고구려의 향학열은 남다른 데가 있다. 고구려는 중국과 동아시아의
                 패권을 놓고 경쟁했던 군사대국이었을 뿐 아니라 문화적으로도 패자(霸者)의 자격을 갖춘 문화강

                 국이었음을 알 수 있다. 문무를 겸비한 저러한 강국에는 반드시 그에 걸맞은 무실역행의 진취적인
                 철학이 있었을 것이다.



                 Ⅵ. Black or White




                   니체는  고대  그리스  문명을  아폴론적  꿈과  디오니소스적  도취의  이중주로  풀어냈으며
                 (Nietzsche 1872), 하이데거는 예술작품을 대지의 은닉과 세계의 환한 밝힘 사이의 대립으로 해

                 석한 바 있다(Heidegger 1935-1936). 그리스 신화에서 아폴론은 태양의 신으로 법과 질서를 상

                 징하는 이성적 존재이고, 디오니소스는 대지의 풍요를 상징하며 술을 관장하는 신으로 열정과 광
                 기의 표상이다.
                   니체와 하이데거가 공시적 차원에서 제시한 해석의 이원적 구도를 우리는 골란(Ariel Golan)이

                 통시적 차원에서 제시한 파토스적 흑신과 로고스적 백신의 종교론에 견주어보고자 한다(Golan

                 2003). 즉 고대 그리스 문명의 디오니소스적 도취와 예술작품에서 대지의 은닉을 흑신에, 아폴론
                 적 꿈과 세계의 환한 밝힘을 백신에 연관지어보고자 한다.
                   지금까지 이 글에서 살펴본 고대 동이의 모습에서 우리는 흑신과 백신의 면모를 여실히 발견한

                 다. 대지에 터한 흑신 웅녀가 은폐된 어두운 동굴 속에서 인고의 성숙 끝에, 법과 질서의 세계인

                 신시(神市)의 백신 환웅과 합일하게 되는 단군사화의 내러티브는, 아폴론적 꿈과 디오니소스적 도


                 58)   舊唐書  , 「東夷列傳」, <高句麗條>, 俗愛書籍 至於衡門廝養之家 各於街衢造大屋 謂之扃堂 子弟未婚之前 晝夜於此
                 讀書習射
                 59)   新唐書  , 「東夷列傳」, <高句麗條>, 亦相矜勉 衢側悉構嚴屋 號扃堂 子弟未婚者曹處 誦經習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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