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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문화 분과


                 취의 이중주가 고대 그리스에서뿐 아니라 우리의 상고사에서도 시공간의 차이를 내며 반복되었음

                 을 보여준다.
                   우리 사유의 시원에서 피어난 샤머니즘은 부여의 영고, 동예의 무천, 고구려의 동맹 등 디오니소

                 스적 축제로 만개했고, 고대 동이 사람들은 술과 노래와 춤에 도취되어 광기(혹은 끼)를 발산하며
                 황홀경을 체험했다. 고구려에 대한 다음의 중국측 사서의 기록에서 보듯이 그들은 세상을 문명의

                 산물인 도덕의 잣대로 재단하기 이전인 태고적 흑신 숭배의 전통을 간직하고 있었다.



                    그 나라의 동쪽에는 큰 굴이 있는데 수혈(隧穴)이라고 부른다. 시월이 되면 나라에서 큰 모임이
                    열리고, 수신(隧神)을 맞이하여 도읍의 동쪽으로 모시고 돌아와 제사를 지내고 나서, 나무로 만

                    든 수신의 형상을 신의 자리에 모신다.            60)



                   수신은 단군사화 속의 웅녀를, 수혈은 웅녀가 삼칠일간 금기하던 굴을 연상케 한다(이병도
                 1959, 250-251쪽).  61)

                   고대 동이 사람들은 흑신의 디오니소스적 열정뿐 아니라 환웅에게서 비롯되는 백신의 아폴론적
                 균형을 알고 있었다. 환웅과 웅녀의 아들로 묘사되고 있는 단군왕검은 그 이름 안에 백신                                62) 과 흑

                 신 63) 의 요소를 나란히 간직하고 있기도 하다. 고구려 고분벽화나 백제 금동대향로와 같은 예술의
                 걸작들은 저 두 신격의 창의적 승화를 통해 만들어졌다. 고구려 고분벽화를 수놓고 있는 해와 달의

                 신이 곧 백신과 흑신이며 그 외의 여러 신들과 동물들과 문양들도 저 두 범주로 분류할 수 있다.                                64)
                   고대 그리스 문화에서 니체가 목도한 염세주의는 동이의 예술세계나 동이에 대한 중국인들의

                 묘사에는 보이지 않는다. 고대 동이 사람들은 고구려 고분벽화의 가무배송도에 표현되어 있듯이
                 망자의 마지막 길도 춤으로 배웅했던 신명 넘치는 사람들이었고, 망자의 집인 고분의 벽에 그가

                 체험한 지상에서의 일과 그가 앞으로 가게 될 천상의 풍경을 동등하게 긍정적인 모습으로 그려냄
                 으로써 은닉의 공간인 대지를 환한 밝힘의 공간인 세계로 재창조한 멋진 예술가들이었다.

                   고대 동이 사람들은 유교가 괴력난신으로 폄하했던 샤머니즘을 믿었고, 불교가 일체개고(一切
                 皆苦)로 폄하했던 삶을 긍정했으며, 도교가 탐닉했던 개인주의와 다른 길을 걸었다. 그들이 추구한

                 철학은 샤머니즘에 입각한 즐거운 학문이었다. 그들은 신들을 믿었고 신 내림을 믿었고 하늘나라

                 60) 陳壽,   三國志  , 卷30, 「魏書」, <東夷傳>, 【高句麗條】, 其國東有大穴 名隧穴 十月 國中大會 迎隧神還于國東上 祭之
                 置木隧于神坐
                 61) 수신은 주몽의 어머니 유화부인이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그녀가 해모수와 만나 정을 통한 곳이 웅신산(熊神山)*(혹
                 은 웅심산(熊心山)**)이라는 점과 그녀의 이름에 새겨진 버드나무(柳)가 샤머니즘의 주요 코드라는 점에서 추론할 수
                 있듯이 유화부인은 웅녀 계열의 흑신이다.
                 * 一然,   三國遺事  , 「紀異」, <高句麗條>.
                 ** 金富軾,   三國史記  , 「髙句麗本紀」, <東明聖王條>.
                 62) ‘단군’은 하늘을 뜻하는 고대 튀르크어 ‘텡그리’를 음사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63) ‘왕검’의 ‘검’은 검정, 곰, 신 등으로 해석할 수 있다.
                 64) 예컨대 쇠망치질을 하는 신(치우?), 소의 머리를 한 농사의 신(신농?) 등은 골란의 분류에 의하면 흑신 계열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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