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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학문: 우리 정신의 철학적 복원  이승종



                 를 믿었고 영혼불멸을 믿었고 윤회를 믿었다. 그들은 이 모든 것을 믿지 않는 우리들과는 너무도

                 달랐다. 그 대가로 우리는 허무주의자가 되어 활력을 잃은 반면 그들은 하루도 노래와 춤을 거를
                 수 없으리만치 생명력과 기상이 넘쳐흘렀다. 그들의 애니미즘은 바로 이 생명의 느낌에 터한 믿음

                 이었다(이승종 2022a 참조).
                   고대 동이 사람들은 자신들이 천지신명에 의해 보살핌 받고 있다고 믿었고 이를 사신도와 사수

                 도로 표현했다. 그들은 이 모든 것을 믿지 않는 우리들과는 너무도 달랐다. 그 대가로 우리는 모두
                 창 없는 단자로 고립된 반면, 그들은 자신들을 보살펴주는 모든 신적인 것들과 제사와 축제를 통해

                 교감하였다. 우리는 인간중심주의자이지만 중심인 인간은 자기 자신뿐인 반면, 그들은 신과 인간
                 을 아우르는 통합적 세계관을 지향하였기에 신들은 그들과 늘 함께 하였다. 대부분의 우리는 물신

                 (物神)만을 숭배하는 반면, 그들은 넉넉하지 못한 살림에도 먹는 것을 아껴가면서까지 신들에 제사
                 지냈던 영적인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세상을 온갖 신들이 공존하는 경이로운 별천지로 이해했던

                 반면, 인생 뭐 있느냐고 자조하는 우리는 니체가 말한 최후의 인간이 되어버렸다.                              65)



                 Ⅶ. Ebony and Ivory



                   흑신과 백신의 전통이 조화를 이루어오던 동이의 역사는 조선에 와서 일대 전환을 맞게 된다.

                 동이의 흑신 전통을 지워내고 중국의 유교라는 단일한 체제로 조선을 리셋한 것이다. 이로 말미암

                 아 우리 고유의 즐거운 학문도 절맥되다시피 했다. 유교가 지향하던 이성중심주의와 인간중심주
                 의는 서양의 근대성으로 옷을 갈아입은 상태로 여전히 우리 시대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 탈근대성
                 의 대두에 편승해 근대성에 대한 비판은 유행을 타지만 그 전신인 유교의 도덕주의에 대한 비판은

                 찾아보기 어렵다.

                   탈근대성의 선구인 니체가 창조한 위버멘쉬는 그의 지향점이 선악의 저편에 선 탈인간중심주의
                 임을 가리키고 있다.       66)  니체의 탈인간중심주의가 세속적 집단성에 빠진 익명적 개인을 초월해 자
                 기 운명을 깨닫는 본래성의 신격인 디오니소스로부터 비롯된 것처럼, 현대의 이성중심주의를 해

                 체하고 지양할 수 있는 원천으로 우리는 동이의 흑신 전통과 즐거운 학문을 호출하고자 한다.

                   이성을 지녔다지만 우리는 여전히 동물이기도 하다.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사람을 이성적
                 동물로 정의한 것이다. 단군왕검이 그러하듯이 이성적 동물이라는 표현에도 백신과 흑신의 요소
                 가 나란히 새겨져 있다. 사람에게서 흑신적 동물성은 절대로 소멸될 수 없다. 사람의 동물성은 지

                 워내야 할 암흑물질이 아니라 생명의 원천이다. 니체의 철학은 그것을 부정하는 모든 형태의 이성

                 중심주의가 오히려 생명이 고갈된 허무주의로 화함을 폭로하고 있다.


                 65) 최후의 인간(Letzter Mensch)은 Ⅶ장에서 살펴볼 위버멘쉬의 대척점에 선, 안락과 안위를 추종하는 피동적 허무
                 주의자를 의미한다. Nietzsche 1885, “Zarathustra’s Vorrede” 참조.
                 66) 위버멘쉬(Übermensch)의 문자적 의미가 탈인간(중심주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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