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2 - 국제학술문화제-동북공정 분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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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공정 분과


                   이처럼 서북부와 동북부에 각각 위치한 거란과 말갈은 때로는 중국 국가에 예속되어 고구려와

                 적대하고, 때로는 고구려에 예속되어 중국 국가와 적대하면서 고구려와 중국 국가의 관계에서 미
                 묘하게 작용하였을 뿐만 아니라 상호 경쟁을 통해서도 요동과 만주일대의 역사 전개에 일정한 몫

                 을 담당하였다. 『수서』「동이열전」말갈전에 의하면,



                    ㈐-7. “말갈국은 서북으로 거란과 서로 접하여, 매번 서로 위협하여 빼앗으려 하였다. 당고조가
                         이를 경계하여, ”나는 거란과 너희를 다르게 생각지 않으니 각자 자기 영토를 지킨다면 안

                         락하지 않겠는가. 어찌 매번 서로 공격하여 나의 뜻과 심하게 어긋나는가 하고 힐책하였
                         다.” 40)



                   이러한 상호 경쟁과 갈등에는 고구려 등 외부 세력이 개입되기도 하였다. 한 예로,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8. “영휘 5년(654년)에 장(보장왕)은 말갈병으로써 거란을 공격하여 신성에서 전투를 벌였
                         다.” 41)




                   이와 같이 거란과 말갈이 혹은 중국 국가에 부회(附會)하고 혹은 고구려에 부속하는가 하면, 혹
                 은 서로 연합하고, 혹은 서로 상쟁하는 등 일정한 행동양식을 유지하지 못한 까닭은 일차적으로

                 양자가 각각 불상총일(不相總一)해 통일된 국가 체제를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지만 근본적으로는
                 양자의 세력이 아직 성장하지 못해 요동 및 만주의 역사 전개과정 속에서 주체적 위상을 부여받지

                 못하고 부수적 역할만을 수행했기 때문이다. 이들이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것은 고구려가 패
                 망한 뒤부터 비로소 가능하게 되었다.



                     6. 말갈과 몽골의 관계



                   칭기스칸    42) 과 그 후예들인 몽골인들은 말갈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 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

                 그것을 알아보기 위해서 『몽골비사』             43) 를 참조하였다. 『몽골비사』는 몽골사람들의 조상신화와 건

                 국과정을 담고 있는 가장 오래된 사료이며, 몽골어로 기록된 가장 방대한 초기 문헌 자료인데, 우
                 리의 『삼국유사』나 『용비어천가』와 같은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40)『隋書』卷81「東夷列傳」‘靺鞨傳’참조.
                 41)『新唐書』卷220「高麗傳」참조.
                 42) 칭기스는 『몽골비사』의 주인공인 테무진이라는 몽골인을 漢語의 ‘皇帝’에 상당하는 qayan, qahan 또는 qa’an으
                 로 거명할 때 함께 사용하는 칭호로 장엄하고 위대함을 나타내는 말이겠으나 확실한 뜻은 알 수 없다.
                 43) 유원수 역주, 『몽골비사 : 몽골의 비밀스러운 역사 元朝秘史』, 사계절출판사, 200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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