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9 - 국제학술문화제-동북공정 분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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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갈과 여러 북방민족들 간의 관계 정립이 동북아시아 고대 역사 인식 체계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 민성욱
『요사』권2「태조본기」에는,
㈐-1. “고려ㆍ예맥ㆍ철려ㆍ말갈 등이 조공하러 왔다.” 31)
여진의 전대를 말갈로 보았고, 여진도 여러 갈래였다고 보았다.『요사』「백관지」에 의하면,
㈐-2. “여직국ㆍ북여직국ㆍ남여지국ㆍ갈소관로여직국ㆍ장백산여직국ㆍ압록강여직국ㆍ빈
해여직국 등이 있다.” 32)
10세기 전후의 동아시아 제국 사서 중 『송사』 및 『고려사』에는 모두 여진이라 하였고 『요사』에
만 유일하게 여직(女直)으로 기록하였다. 이는 다름 아닌 피휘(避諱)에서 나온 것이다. 『요사』「흥
종기」에 “흥종신성효장황제 휘종진 자이불근 소자지골(興宗神聖孝章皇帝 諱宗眞 字夷不菫 小字只
骨)”이라 하였다. 그리고 여진의 명칭이 사적에는 903년에 처음 보인다.
말갈족과 거란족은 동 시대에 유사한 지역에 거주하고 있었다. 따라서 북제에 조공을 바치는 것
도 동호-선비계인 실위, (고막)해, 거란과 숙신-읍루계인 말갈이 동일한 기간에 나란히 사신을 보
내 조공하는 기록이 있다.
㈐-3. “이 해에 실위ㆍ고막해ㆍ말갈ㆍ거란이 나란히 사신을 보내 조공했다.” 33)
거란족이 ‘요’를 세웠을 때는 말갈족(여진족)이 거란족에 편입되기도 하고, 말갈족(여진족)이
‘금’을 세웠을 때는 거란족이 일부 편입되기도 하였다. 서로 간의 혈통적으로도 혼혈이 일어나거
나 문화적으로도 공유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말갈과 거란의 관계를 잘 나타내는 기록이 있다. 나당
전쟁 당시 당에 의해서 동원된 거란족과 말갈족으로 구성된 당군은 대신라전을 수행했다. [표 1]
나당 전쟁기 당군 구성과 전투 유형은 말갈병과 거란병이 어떻게 당군으로 편성되어 전쟁을 수행
했는지를 보여준다.
31)『遼史』卷2「太祖本紀」. “高麗·濊貊·鐵驪·靺鞨來貢.”
32)『遼史』「百官志」,“女直國ㆍ北女直國ㆍ南女直國ㆍ曷蘇館路女直國ㆍ長白山女直國ㆍ鴨綠
江女直國ㆍ瀕海女直國 等.”
33)『北齊書』卷7「帝紀」第7 武成帝 河淸 2年,
“是歲, 室韋ㆍ庫莫奚ㆍ靺鞨ㆍ契丹竝使朝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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