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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갈과 여러 북방민족들 간의 관계 정립이 동북아시아 고대 역사 인식 체계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   민성욱



                 이것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숙신의 원거주지에 남았던 집단은 그대로 숙신, 한반도로 이주하였

                 던 집단은 숙신에서 말갈로, 연해주로 이주하여 읍루를 세웠던 집단은 숙신에서 읍루, 물길, 말갈
                 로, 내몽고자치구와 몽골 동부지역으로 이주한 집단은 숙신에서 물길, 말갈로 불려 지면서 후대에

                 는 모두 동일하게 말갈로 불려졌을 것이다.                18)  숙신과 여진 등은 유사한 어원을 가지는 명칭인데
                 반해 읍루는 계통을 잘 알 수 없는 명칭이다. 이렇게 다른 명칭이 나타나게 된 이유에 대하여 숙신

                 과 읍루가 같은 족계에 속한 씨족부락으로 주도권의 변화에 따라 명칭이 달라졌다는 견해                                19) 와 ‘동
                 굴’이라는 뜻의 퉁구스 계통의 단어를 음차한 것이 읍루라는 견해                         20) 가 있다.

                   고고학적으로 읍루는 ‘폴체문화’            21) 라고 한다. ㈎-1의 기록과 같이 읍루인들이 북쪽 어디까지
                 사는지 알 수가 없다고 한다. 이렇듯 읍루인들은 옥저와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넓은 지역에 퍼져

                 살았다. 현재까지 확인된 바로는 그들의 북쪽 끝은 사할린과 맞닿는 아무르강 하류까지 이어진다.
                 이러한 읍루의 폴체 문화가 이후, 말갈, 나아가서 여진과도 관련성이 있다는 점은 많은 고고학자들

                 이 지적하고 있다. 러시아 고고학자 V. E. 메드베데프는 우수리강 근처에서 발견된 폴체 문화인
                 1세기 유적 콘드라티예프카와 케드로보 성터를 발굴한 결과, 아무르강 중류에서 발달한 초기 여진

                 문화와 매우 유사한 것으로 나왔다. 즉 말갈과 여진에 이르는 극동 지역의 국가 성장의 시초가 읍루
                 에서 시작되었다는 의미이다.            22)

                   따라서 읍루는 사회 발전이 진전이 되면서 숙신이라는 이름으로 변경되었다가 말갈로 이어지게
                 된다. 이들은 고구려의 구성원이면서 발해의 기층민이 되면서 우리 역사의 일부분을 차지하기도

                 하였다.



                     3. 말갈과 물길의 관계



                   물길은 한ㆍ중ㆍ일의 학자들 모두 말갈에 선행한 숙신-읍루계로 보고 있다. 특이한 점은 중국학

                 계에서 주장하는 전음설로 물길과 말갈이 족칭이 바뀐 것이 아니라 동일한 단어가 시기적인 차이
                 를 두고 다르게 번역된 것으로 보고 있으며, 『통지(通志)』                 23) 의 말갈이라는 단어의 주음에서 “물길,



                 18) 윤내현, 앞의 책, p.513. 참조.
                 19) 幹志耿・孫秀仁, 『黑龍江古代民族史綱』, 黑龍江人民出版社, 1987.
                 20) 趙展, 『皇太極所謂諸申的辨正』
                 21) 폴체는 유대인들이 살던 지역에서 쓰던 명칭이다. 읍루의 땅에는 약 100여년 전에 스탈린의 민족 정책 때문에
                 유대인의 자치주가 소련의 아무르강변에 세워졌다. 아무르강 유역은 읍루와 흑수말갈이 살던 땅이었다. 극동 아무르
                 지역을 대표하는 고대 문화 유적지가 발견되었는데, 유대인들은 지명을 몰라 그냥 ‘벌판’이라고 말한 것이 읍루 유적에
                 ‘폴체’라는 이름이 붙여지게 되었고, 이 폴체 문화는 아무르강 유역은 물론 남쪽으로 두만강 유역까지 이어지는 거대한
                 읍루의 문화권을 이르는 이름이 되었다. - 강인욱, 『옥저와 읍루』에서 발췌
                 22) 강인욱, 『옥저와 읍루』, 동북아역사재단, 2020.11., p150.
                 23) 통지(通志)는 중국 남송의 정초가 소흥 31년(1161년)에 편찬한 책이다. 단대사(斷代史)를 비판하며, 통사 형식인
                 『사기』의 체제를 본따, 삼황으로부터 시작하여 수나라, 당나라에 이르는 전장(典章), 제도를 기록한 정서(政書)이다.
                 십통의 하나이며, 『통전』, 『문헌통고』와 함께 삼통(三通)으로 일컬어진다. 이 책은 청나라의 장학성에 의해 그 가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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