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79 - 국제학술문화제-동북공정 분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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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의 강역에 대한 연구 전준호
忠)이 당에 반란 72) 을 일으켜서 영주도독 조홰(趙翽)를 죽이고 반란을 일으키자, 이때 걸걸중상과
걸사비우가 동쪽으로 달아나고 그 후 대조영이 발해를 건국하였다고 하고 있다.
만세통천(萬歲通天) 연간(A.D.696; 新羅 孝昭王 5)에 거란(契丹)의 이진충([李]盡忠)이 영주도
독(營州都督) 조홰(趙翽)를 죽이고 반란을 일으키자, 사리(舍利) 걸걸중상(乞乞仲象)이라는 자
가 말갈(靺鞨)의 추장(酋長) 걸사비우(乞四比羽) 및 高[句]麗의 남은 종족과 동쪽으로 달아나,
遼水를 건너서 태백산(太白山) 73) 의 동북을 거점으로 하여 오루하(奥婁河) 74) 를 사이에 두고 성
벽을 쌓고 수비를 굳혔다. 武后는 乞四比羽를 허국공(許國公), 걸걸중상(乞乞仲象)을 진국공
(震國公)으로 책봉하여 그 죄를 용서하였다. 比羽가 그 명령을 받아들이지 않자, 武后는 옥검위
대장군(玉鈐衛大將軍) 이해고(李楷固)와 중랑장(中郞將) 색구(索仇)에게 조서를 내려 그를 쳐
죽였다. 이때에 仲象은 이미 죽고 그의 아들 대조영([大]祚榮)이 패잔병(敗殘兵)을 이끌고 도망쳐
달아났는데, 楷固는 끝까지 추격하여 천문령(天門嶺)을 넘었다. 祚榮이 高[句]麗兵과 靺鞨兵을
거느리고 楷固에게 저항하니, 楷固는 패전하고 돌아왔다. 이에 契丹이 돌궐(突厥)에 붙으므로
왕사(王師)의 길이 끊겨서 그들을 치지 못하게 되었다. 祚榮은 곧 比羽의 무리를 합병하여 지역
이 [중국과] 먼 것을 믿고, 나라를 세워 스스로 震國王이라 부르며, 突厥에 使者를 보내어 通交
하였다. 75)
영주(營州) 지역에는 당의 사민정책으로 인해 거란인, 말갈인, 고구려인들이 거주하여 살고 있
었는데 696년 5월 거란추장 이진충(李盡忠)과 손만영(孫萬榮)이 영주도독(營州都督) 조홰(趙翽)의
폭정에 불만을 품고 반란을 일으켰다. 이는 거란의 추장인 이진충이 처남인 손만영과 함께 거란족
을 이끌고 반란을 일으킨 사건이다. 반란군은 영주성을 함락하고 영주도독 조홰(조문홰)를 척살하
고 거란의 독립을 선포하였다. 이에 고구려 유민인 걸걸중상과 걸사비우도 함께 협동하여 투쟁하
였는데 이것이 발해의 건국의 발단이 되었다. 사료의 기록에서는 오루하(奥婁河)를 사이에 두고
성벽을 쌓고 수비를 굳혔다고 하였다. 삼국지 위서 동이전에 의하면 오루(奥婁)는 읍루의 반음으
로 기록하고 있다. 즉 같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읍루(挹婁)는 만주어 백마(白馬)를 뜻하는 야루
(yalu)의 음차로서 이는 압록(鴨綠)과 발음이 같다. 76) 즉 오루하(奥婁河)는 압록하(鴨綠河)를 뜻하
는 것이다. 또한 『신당서(新唐書)』 발해의 기사에는 읍루에 속한 주(州)를 기록하고 있는 데, 定州·
潘州 77) 가 있으며 번주(潘州)의 위치를 추리도에서 찾으면 아래 지도와 같다.
72) 송막도독의 위치에 있는 거란의 추장 이진충이 당의 지배에 항거하여 일으킨 반란
73) “청나라 비석에는 의무려산이 태백산이라고 되어 있다” 민성욱 “해성 석목성 고인돌에는 고조선의 흔적이...”, 『K
스피릿』, 2018-09-07
74) 『삼국지(三國志)』에 보면 ‘읍루’의 전음이라 하였다. 「卷三十 魏書 三十 烏丸鮮卑東夷」 爲挹婁之轉音
75) 『신당서(新唐書)』 「북적열전(北狄列傳)」 발해(渤海) 내용
76) 『거란고전(契丹古傳)』을 근거로 볼 때 鴨綠, 挹婁, 奥婁, 耶律은 서로 음이 통하며 yalu의 음차어로 추정된다. yalu
는 ‘백마’라는 뜻과 ‘경계’라는 뜻도 있다. 즉 이는 경계를 뜻하는 패수(浿水)의 만주식 표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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