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77 - 국제학술문화제-동북공정 분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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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의 강역에 대한 연구  전준호



                   이런 기록은 장수왕의 평양성(平壤城)이 하북성 노룡현 지역에 있었다는 사실을 말해주며 이곳

                 이 당나라가 설치한 안동도호부(安東都護府)의 위치이다. 즉 안동도호부의 동쪽에 신라(新羅)가 있
                 고 발해(渤海)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고구려의 멸망 이후에 이를 계승한 발해가 건국되게

                 된다. 이 처럼 고대 지명 연구에 있어 학계의 연구는 매우 미흡한 상황이며 이런 사료들과 다르게
                 역사 왜곡과 동북공정의 목적으로 만들어진 담기양(譚其驤)의 『중국역사지도집(中國歷史地圖集)』

                 을 참고로 하여 평양성과 안동도호부의 위치를 가르치고 있는 것이 현재 사학계의 현실이다.





























                          그림 15 담기양의 『중국역사지도집』과 한국학중앙연구원의 왜곡된 안동도호부 위치


                     2. 거란과의 서쪽 경계




                   거란과 발해의 서쪽 경계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한다. 거란은 야율아보기(耶律阿保機)가 국가 체
                 제를 만들기 전까지는 독립적인 국가 체제를 만들지 못했다. 초기 거란은 여러 유목 민족 부족들의

                 연합으로서 이익에 따라 수, 당에 붙었다가 고구려와 유대 관계를 맺는 등 국가로서의 정체성을
                 지니지 못했고 실제 유목민족의 관습으로 특정 지역의 땅을 소유한 것 보다 여러 강대국들에 이끌

                 려 다니는 유목 국가의 성격이 강했다고 할 수 있다. 거란을 하나의 국가로서 통합하고 국가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게 된 것은 야율아보기(耶律阿保機) 이후로 볼 수 있는 데, 거란은 말갈의 지명들과

                 관련이 있는 상경 임황부(上京臨潢府) 지역에서 도읍했다. 또한 『신당서(新唐書)』 「북적열전(北狄
                 列傳) 말갈(渤海)」에는 발해와 거란과의 국경에 대해 기록이 있는데 발해의 부여부(扶餘府)가 거란

                 (契丹)과 경계를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부여(扶餘)의 옛 땅에 둔 부여부(扶餘府)에는 늘 강한 군대를 주둔시켜 거란(契丹)을 방어하는

                    데, 扶州·仙州의 2州를 통치한다.          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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