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82 - 국제학술문화제-동북공정 분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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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공정 분과


                   구당서의 내용을 보면 대조영은 천문령 부근에서 항전한 후에 동쪽 계루(읍루)의 옛 땅을 차치하

                 고 동모산에 웅거하여 성을 쌓고 살았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곳이 바로 초기 발해의 도읍지임을
                 알 수 있다. 종합하여 걸걸중상과 대조영이 이해고와 항전을 한 위치와 이동로를 지도위에 표시해

                 보면 다음과 같은데 이 지명들이 거란지리지도의 지명의 위치와도 정확히 일치한다. 즉 대조영이
                 도읍한 동모산(東牟山)이 바로 거란지리지도의 장백산(長白山)이 된다. 그리고 지도에 난하 동쪽이

                 발해의 강역으로 표시되어 있다.




































                               그림 19 걸걸중상과 대조영의 항전 위치와 발해의 첫도읍지의 위치 비교


                     2. 신당서 기록의 방 5천리 강역




                   신당서(新唐書)에 기록에는 발해는 사방 5천리이며 위치에 대해서는 서쪽에는 거란(契丹)이 남
                 쪽에는 신라(新羅)와 맞닿아 있으며, 동쪽은 바다에 닿았다고 하고 있다.



                   발해(渤海)는 본래 粟末靺鞨로서 高[句]麗에 附屬되어 있었으며, 姓은 大氏이다. 高[句]麗가 멸망

                 하자, 무리를 이끌고 挹婁의 東牟山을 차지하였다. 그곳은 영주(營州)에서 동으로 2천리 밖에 위치
                 하며, 남쪽은 新羅와 맞닿아, 泥河          82) 로 경계를 삼았다. 동쪽은 바다에 닿고, 서쪽은 契丹과 [접하고

                 있다.] 城郭을 쌓고 사니, 高[句]麗의 망명자들이 점점 모여 들었다.                      83)


                 82) 『삼국사기(三國史記)』 『삼국유사(三國遺事)』를 보면 니하(泥河)를 신라의 북쪽 국경인 하슬라(何瑟羅)에 위치한 강
                 으로 기록하고 있다. 이를 근거로 볼 때 요하(遼河)나 그 지류라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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