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0 - 국제학술문화제-동북공정 분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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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공정 분과
간에도 일정한 연결고리가 있음을 밝혀냄으로써 한민족과 여러 북방민족들 간에도 동일한 역사적
연결고리가 있음을 합리적으로 추론할 수 있을 것이다.
Ⅱ. 말갈관계사 관련 선행 연구
말갈관련 연구는 일본이 먼저 시작했고 한국, 북한, 중국, 러시아 등이 자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말갈의 실체 연구와 그 결과에 따른 역사의 귀속 문제를 다루어 왔다. 이러한 연구사의 정리는 앞
논문에서 충분히 이루어 졌기 때문에 본 논문에서는 생략하기로 한다. 선행 연구결과에 따르면 말
갈은 그 실체가 있으며, 실체가 있기 때문에 동일한 시ㆍ공간에서는 그 관계가 성립되고, 관계사를
추적해 가다보면 말갈의 실체와 역사적인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 따라서 본 논문에서는 전체 연구
사 대신에 최근 국내학계에서 이루어진 말갈 관계사 연구를 정리해 보고자 한다.
우선 강인욱(2009년)은 서기 2세기부터 4세기까지를 중심으로 말갈문화의 형성과정을 살펴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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았고, 그 결과 말갈문화는 폴체문화 로 대표되는 읍루 문화권에 있지만, 반농반목의 생계경제는
선비문화계통의 유입이 있었다는 것이다. 고고학적으로는 농경, 유목, 수렵, 채집의 성격이 모두
나타나는 복합경제의 특징이 보이며,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거쳐 부여가 멸망한 이후에 독자적인
세력으로 성장할 수 있었고 발해가 그 기본 주민집단을 말갈에 기반한 것은 이러한 말갈 자체의
내적인 사회발전과 관련이 있다고 보았다. 4)
권은주(2009년, 2011년)는 말갈7부의 출현은 물길을 포함하여 고구려가 주변 여러 집단을 7개
의 지역단위로 구분하여 인식한 것과 관련이 있다고 보았고, 발해시대의 말갈은 고구려 멸망 전후
말갈 7부가 지역집단으로서의 성격을 점차 상실해가며 다시 재편되었다. 그 이후 대다수의 말갈은
차츰 발해라는 국가 조직 내에 편입되어 발해민이 되었다고 한다. 또한 발해는 8세기말 두 차례
천도를 단행하였는데, 785년 동경천도와 794년 상경환도이다. 이렇게 천도한 배경을 두고 문왕
이 서쪽지역의 혼란이 초래할 수 있는 복속민족의 이탈을 막고, 연해주 지역으로의 영역 확장 정책
을 시행한 것으로 보았다. 상대적으로 안정된 발해와의 교역은 거란, 실위, 말갈 등 북방민족들에
게는 매우 중요한 사안이었고, 발해에 대한 경제적 의존도가 높아질수록 발해의 영향력이 증가되
었을 것으로 보았다.
5) 6)
김용백(2010년)은 백제 초기 낙랑 우두산성의 영향력에 의해 맥계 말갈은 낙랑의 부용세력으로
2) 민성욱, 「말갈과 여러 국가(민족) 간의 관계정립이 한국고대사 인식체계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융합과학으로
본 동북아 고대사』, 대한사랑, (2021.11.)
3) 폴체문화는 아무르강 유역은 물론 남쪽으로 두만강 유역까지 이어지는 거대한 읍루의 문화권을 이르는 말이며, 이때
폴체는 러시아 말로 벌판이라는 뜻이다.
4) 강인욱, 「말갈문화의 형성과 2~4세기 읍루ㆍ선비ㆍ부여계 문화의 관계」, 『고구려발해연구』 33집, 고구려발해학
회, 2009.03.
5) 권은주, 「靺鞨 7部의 實體와 渤海와의 關係」, 『高句麗渤海硏究』 35輯, 고구려발해학회, 2009.11.
6) 권은주, 「8세기말 발해의 천도와 북방민족관계」,『고구려발해연구』 제41집, 고구려발해학회, 20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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