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6 - 국제학술문화제-동북공정 분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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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공정 분과
동일한 종족 계통으로 보는 숙신, 읍루, 물길, 여진, 만주로 이어지는 숙신-읍루계, 즉 퉁구스계
민족들과도 일정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지역에 따라 친예맥계(부여, 고구려, 백제, 낙랑, 옥저 등),
친동호계(거란, 해, 실위, 몽골 등), 친돌궐계, 친중국계 등 대외 관계를 달리하는 말갈 집단들이
존재했다. 그 이유는 말갈이 중앙집권 형태가 아니라 부락 단위로 흩어져 있어 지정학적 위치, 정
치적 상황, 경제적 이해관계에 따라 독립적으로 대외 관계를 맺었기 때문이다. 말갈은 고구려군의
용병이 되어 수와 당을 끝까지 괴롭히기도 하고, 나당전쟁 시에는 거란과 같이 당나라 군대에 편성
되어 신라를 괴롭히기도 했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후 신문왕 때는 신라의 중앙군사조직인 구서
당 중 제6서당인 ‘흑금서당’의 일원이 되어 신라왕의 친위부대 역할을 하였다.
돌궐이 거란을 요서지역에서 몰아낸 이후에는 송화강 유역에 있던 물길 집단이 요서지역으로 이
주해와 요서말갈(속말말갈, 백산말갈)로 친돌궐 또는 친고구려 정책을 펼치기도 하였다. 옥저 지
역에는 읍루가 이웃하고 있었는데 위나라 관구검의 침략으로 초토화되고 그 자리에 자연스럽게
읍루가 내려와서 정착하게 되었고 이후에 백산말갈이 되어 속말말갈과 함께 고구려의 구성원이
되었으며, 고구려 멸망 후에는 고구려 말갈에서 발해 말갈로 변신하여 발해 건국을 위한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다. 발해 건국 후에는 말갈 고유의 문화를 유지하면서 발해의 기층민이 되어 발해 역사
와 문화의 발전을 이끌었다. 발해는 동아시아 역사의 변방이었던 극동 지역을 역사의 중심으로
끌어 올려 ‘해동성국’의 위상을 드높였다.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발해가 주변의 제 종족들을 통합
시키고 힘을 합쳐서 춥고 황량한 지역에서 거대한 제국을 만들어내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발해의
노하우는 훗날 거란이나 여진이 각각 요와 금 제국을 일으키는 데 큰 원동력이 되어 주었다. 결국
말갈의 후예인 여진족은 후금에 이어 중국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갖게 된 청 제국을 탄생시켰다.
그런가 하면 고구려 말갈로서 고수 및 고당 전쟁에서 고구려가 승리할 수 있도록 견인차 역할을
했던 말갈은 전쟁 후 당으로부터 참혹한 학살이라는 보복을 당하기도 하고 발해 건국 후에는 5경
15부 62주 중 막힐부의 구성원이 되었지만 거란족에 의해 발해가 멸망당하면서 일부는 고려, 요,
돌궐, 당, 여진 등으로 흩어졌지만 또 다른 일부는 서쪽으로 이동하여 훈족(흉노), 아바르족(유연),
투르크족(돌궐) 등의 전철을 밟아 서유럽 지역에 강력한 인상을 남겼으며, 지금의 헝가리의 건국
주체가 되었다. 말갈 관계사 연구를 마무리 하면서 이제는 말갈을 비롯한 북방민족의 서유럽 개척
사와 고유한 말갈문화와 언어 그리고 생활상에 대한 연구를 지속적으로 해 나갈 예정이다.
【주제어】 말갈, 말갈관계사, 만주사, 동북아시아 고대사, 말갈과 북방민족들 간의 관계, 동북아시
아의 고대 역사 인식 체계, 말갈과 읍루의 관계, 말갈과 물길의 관계, 말갈과 돌궐의 관계, 말갈과
거란의 관계, 말갈과 몽골의 관계, 말갈과 여진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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