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40 - 국제학술문화제-동북공정 분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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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공정 분과
가 조선상고사 에서 고구려 건국연대를 1백 몇십년 소급하기로 한 후 여러 사서의 기록들을 유추
해석한 것을 근거로, 한 무제가 고구려 대무신왕으로 추정되는 시기에 고구려를 침략하였으나 9년
간의 전쟁 끝에 패퇴하였다고 적고 있을 뿐이다. 48) 신채호의 기록이 사실일지라도 한 무제는 고구
려와의 전쟁에서 패퇴하였으므로 고구려의 영역 내부에 진입하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
서 한사군의 위치는 고구려가 점유하고 있던 요하 서쪽 의무려산과 의현 일대의 서쪽에서 비정(比
定)되어야 타당한 것이다.
한사군이 한반도에 위치하지 않았다는 학설 중 서로 주장하는 바가 다른 것을 대표적으로 골라
서 표를 만들면 [표 1] 49) 과 같다.
[표 1] 한사군의 위치 비정에 대한 학설
이름 한사군의 위치 및 변천 근거 문헌
종이 위에 그린 가설로, B.C. 82년에 진번 임둔 폐지, 현도, 낙랑군 주석 조선상고사 상,하
신채호
은 요동군내에 교설(僑設) , (형설출판사. 1986)
진번군:남만주 광녕, 요양, 개평, 해성의 남부지방, 임둔군: 요동반
도 돌출부, 현도군: 요동반도 동부해안, 낙랑군: 은~주 시기는 고죽 한국고대사(인간사,1988)
문정창
국, 춘추후기는 고조선지역, 한 초기는 왕검성이 소재한 조선현으 고조선사연구(한뿌리, 1969)
로 북지 ~ 남만주(발해만 북안)
낙랑군, 임둔군, 진번군은 난하로부터 대릉하 유역, 현도군은 대릉 한국고대사신론(일지사,1986),
윤내현
하와 요하사이에 존재했음 고조선연구(만권당,2016)
진번과 임둔은 90년전 읍락국가, 낙랑과 현토는 B. C.108년에 설 『한사군은 중국에 있었다』
문성재
치함 (우리역사연구재단, 2016)
한편 김종서는 박사학위논문 「고조선과 한사군의 위치 비정 연구」에서 수학적 위치고증 방법으
로 한사군의 위치를 설정했다. 그가 도출한 한사군의 위치는 [그림 2] 50) 에 나타난 바와 같이, 낙랑
군의 위치는 앞에서 위만조선의 도읍으로 비정된 하북성 창려나 그 인근지역, 현도군은 북경 동부
지역, 임둔군은 난하 동쪽의 하북성 창려 북서쪽 인근지역, 진번군은 조양이나 그 인근지역으로
비정했다. 51) 한사군의 위치가 요하 서쪽이라는 것을 과학적으로 제시한 것으로 신뢰할 수 있다.
48) 신채호, 박기봉 옮김, 조선상고사 , (2006), 181~192쪽; 신채호는 중국이 한 무제가 패퇴한 사실을 역사서에
기록하지 않은 이유는 위중국휘치(爲中國諱恥) 즉 중국에게 수치스러운 일은 감추는 춘추필법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했다.
49) 이일걸, 「광복 이후의 한사군에 대한 연구사 고찰」 간도학보 제3권 제2호, (2020), 147~148쪽에서 발췌하여
재편집한 것임.
50) 김종서, 「고조선과 한사군의 위치 비정 연구」, (2005), 280쪽.
51) 김종서, 「고조선과 한사군의 위치 비정 연구」, (2005), 246~27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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