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42 - 국제학술문화제-동북공정 분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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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공정 분과
Ⅴ. 결론
1. 요약 및 결론
만주의 영토권을 정의하기 위해서는 만주 영토문화의 문화주권이 누구에게 있는지가 가장 중요
하다. 영토문화의 문화주권자가 영토권자가 되기 때문이다. 비록 지금은 한족 중심의 중국이 만주
를 강점하고 있지만, 그 영토문화의 문화주권자는 우리 한민족이라는 것을 밝히기 위해서 많은 학
자가 노력한 덕분에, 지금까지 밝혀진 바에 의하면 만주의 영토문화는 한반도에서 생활하고 있는
우리 한민족과 동일하므로, 그 문화주권자는 우리 한민족이라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하지만 비
록 내용 면에서는 왕성하게 활동하지 못했다고 할지라도, 무려 400여년을 존속하며 중국 한족의
정치・경제・문화의 전초기지 역할을 했던 한사군이 한반도나 한반도 가까운 만주 중심부에 위치
했다는 것이 정설로 확정된다면 중국은 만주의 영토문화에 대한 문화주권이 우리 한민족에게 귀
속된다는 것을 부정할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한족 중심의 중국은 만주의 영토권을 영구히 자국에
귀속시키기 위해서 동북공정을 비롯한 온갖 술수를 부리고 있는데 오히려 왜곡할 수 있는 빌미만
하나 더 제공할 뿐이다. 따라서 한사군이 왜 요하 서쪽에 설치되었는지를 밝혀서 정설로 확정 짓는
일은 아주 시급한 문제다. 다행히 근래에는 고구려 발상지 졸본이 지금까지 알려진 바와 같이 환인
현이 아니라 의무려산과 의현 일대라는 설이 제기되고 증명됨으로써 유리왕 11년에는 시라무렌
강 유역의 선비족까지 복속한 것이 정설이 될 수 있게 했을 뿐만 아니라, 고구려가 건국 당시부터
요하 서쪽의 넓은 영역을 차지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공표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한사군의 위치를
제시하는 방법도 단순히 문헌에 의존하는 방법을 넘어서 수학적으로 계산하는 과학적인 방법도
도입되었다. 그런 학설과 방법을 종합해서 산출할 때 낙랑군의 위치는 하북성 창려나 그 인근지역,
현도군은 북경 동부지역, 임둔군은 난하 동쪽의 하북성 창려 북서쪽 인근지역, 진번군은 조양이나
그 인근지역으로 한사군의 위치는 요하 서쪽으로 비정(比定)된다. 한반도는 물론 만주에도 한사군
은 설치되지 못했다. 그것은 한 무제가 고조선을 멸망시킬 당시 요하를 건너지 못할 요인이 있었을
것이고, 그것이 바로 고구려 영토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결국 한사군이 고조선을 멸망시킨 기원
전 108년에 고구려는 이미 존재하는 나라였다. 따라서 그동안 제기되어온 고구려 건국연대의 소
급에 관한 이론들을 검토하여 그중 가장 합리적인 기원전 217년을 고구려 건국연대로 설정하였
다. 고구려는 건국 당시 요하 서쪽 의현 일대와 의무려산에 영토를 확보하고 유리왕 11년에 북쪽으
로 시라무렌강 유역의 선비족을 점령하여 남북으로 영토를 확장하였다. 또한 동명왕은 물론 유리
왕과 대무신왕도 영토확장에 박차를 가해서 한사군이 설치되던 기원전 108년에는 적어도 동과
남으로는 동해와 평안도까지 뻗어있었고, 북으로는 부여도 복속시켰던 제국이었다. 한 무제는 위
만조선을 멸망시킨 후 당연히 고구려와의 전쟁을 통해서만 만주의 중심부나 한반도에 진입할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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