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96 - 국제학술문화제-동북공정 분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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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공정 분과
“요는 효성이 지극한 순에게 두 딸인 아황과 여영을 시집보내고 등용하여 20년이 지나 섭정토
록 했고 섭정한지 8년 만에 요가 붕어하였다. 요가 죽자 순은 단주에게 제위를 양보했지만 천하
의 뜻이 순에게 돌아가자 순의 즉위하였다. 순은 우를 하늘에 천거하여 계승자로 삼았으며, 70
년이 지나 순이 붕어하자 삼년상이 지나 우는 제위를 사양하고 순의 아들 상균을 피해 양성으로
가자, 천하의 제후들은 상균을 떠나 우를 알현하러 가니 그제서야 국호를 하후(夏后)라 하고 고
요를 하늘에 천거하고 정권을 넘겨주려고 했지만 고요가 죽었다. 10년이 지난 후 우는 천하를
익(益)에게 넘겨 주었다. 삼년상이 끝나자 익은 우의 아들 계(啓)에게 제위를 양보하고 기산의
남쪽에 살았다. 익(益)은 우를 보좌한 기간이 얼마 되지 않아 천하의 신임을 얻지 못하였다. 은
(殷)의 시조인 설(契)의 어머니 간적이며 그녀는 유웅씨 부족의 딸이며 제곡의 둘째 부인이다.”
위 기술 부분을 김재섭의 ‘고조선 기년표’ 77) 에 의거 분석해보면, 아황과 여영은 요의 두 딸이
아니고 여영만 딸이며, 아황은 여영의 고모이다. 요가 20년이 지나서 순으로 섭정했고 8년 후 요가
붕어했다고 했지만, 불확실한 부분이다. 요의 재위 기간이 37년인데 순이 9년 동안 재위에 있었
다. 요는 10년 정도 통치를 한 후 바로 순에게 권력을 빼앗긴 후 순이 28년 간 요를 대신하여 통치했
다는 기록이 있다. 순은 단주에게 제위를 양보하지 않았다. 70년이라는 숫자 역시 의아스럽다. 순
은 재위 9년 만에 우에게 죽음을 당한다. 따라서 우는 순을 죽이고 나서 8년을 통치하였다. 우가
제위를 사양한 기록과 국호를 하후(夏后)로 정한 기록은 없다. 우가 사망하자, 백익이 왕위를 이어
받았으며, 우의 아들 계에게 양보한 것이 아니고 오히려 계(啓)에 의해 장모 사모무와 함께 우(禹)
제삿날에 안양(安陽)에서 피살당하였다. 백익이 ‘천하의 신임을 얻지 못해 제위를 양보했다는 기
록 역시 왜곡된 것이다.
2. 최근 중국학계의‘기자조선’왜곡 실상
최근 중국에서는 동북공정·하상주단대공정·중화문명탐원공정의 모든 과정이 끝난 상황이다.
심지어 그들이 고심하던 고대 중국기원의 기년 문제가 마무리되어 그런지는 몰라도 이웃국가의
고대 국가기년의 문제를 갖고 막말을 퍼붓고 있다.
중국의 2007년 출판한 서적에는“기자조선은 하나의 실존의 역사이며, 중국 동북문명사를 여는
단초(端初)이다. 기자(箕子)는 상말주초(商末周初)에 조선으로 달아나서, 한강 이북지역에 정권을 수
립하여 1천년을 존속하면서 중원 국가의 조선반도 지방정권이었다” 78) 고 기록하였다. 이와 같은 최
근의 중국학계의 주장은 동양사상 최초의 국가인 단군조선(고조선)의 존재를 부정하려는 시도이다.
더구나 중국의 고대 역사서는 사마천의 『사기』 이후 자국에 유리하게 윤색하여 기록하는 등의
77) 駱貧基, 김재섭 등 역,『金文新考』上, 33-36쪽.
78) 黃斌·劉厚生, 『기자조선사화(箕子朝鮮史話』, (遠方出版社, 2007), 序, 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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