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93 - 국제학술문화제-동북공정 분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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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고대 문명 역사공정에 대한 대응전략 이일걸
‘고신(高辛)은 전욱 고양(高陽)의 족자(族子)이다’라는 말은 고신이 고양의 사위가 되었기에 한
일족이 되었음을 말한다.
위 예문에서 황제-→창의(昌意)-→전욱 고양(高陽)으로 이어지고 있다. 고양은 창의(昌意)의 아
들이 아니다. 더구나 고양은 신농의 손자인데 황제의 손자로 기록한 것은 사마천의 큰 오류이다.
고양(高陽)의 아버지는 신농의 아들인 희화(羲和) 주(柱)다. 고양이 죽자 백부 현효의 손자 고신(高
辛)이 왕위를 이었다는 점도 이상하다. 고신은 소호 김천의 손자이고 교극(蟜極)의 아들이면서 고
양의 사위다.
지(摯)가 정치를 못하니 동생인 방훈(堯)가 계승했다는 점도 윤색(潤色)된 구절이다. 당시의 치열
했던 형제간의 왕위 계승 다툼을 그리지 않고 있다. 고신 이후의 왕위 계승권은 신농계인 고양의
손자인 성축·오회 형제가 갖고 있었지만 고신은 정해진 왕위 승계율을 어기고 자신의 정비(正妃)
인 중계의 소생인 방훈(堯)을 택하지 않고 차비(次妃)인 간적(簡狄)의 소생인 지(摯)에게 넘겨준다.
이후 왕위 계승권을 두고, 왕위를 빼앗긴 신농계 후손들과 왕위를 차비 소생인 지(摯)에게 빼앗긴
요(堯) 간애 치열한 다툼이 일어난다. 결국 중려(重犂)는 요(堯)에게 죽임을 당한다. 73) 비록 舜과
오회(吳回)는 요(堯)를 도와주지만 차기 왕위 계승자인 오회(吳回)마저 북경지역으로 유배를 당한
다. 결국 이와 같은 정략적인 투쟁 때문에 지(摯)는 즉위한지 9년 만에 왕권을 堯에게 넘긴다.
요(堯)가 우순(虞舜)에게 두 딸인 아황(娥皇)과 여영(女英)을 시집보낸다는 부분은, 당시 푸날루
아 혼인(누비결혼)을 숨기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아황(娥皇)와 여영(女英)은 요(堯)의 두 딸이 아니
고, 아황(娥皇)은 요의 누이이고 여영(女英)의 고모이다. 우순(虞舜)은 언후(匽侯)인 오회(吳回)와
푸날루아 관계의 同室兄弟였다. 74)
예문2) “요(堯)는 제위에 오른지 70년 만에 순(舜)을 얻었고, 순에게 천자의 정치를 대행하게 하
였으며, 은거한지 20년 만에 순을 하늘에 추천하였다. 순의 부친 고수는 맹인이었고, 아내가 세
상을 떠나자 재혼하여 아들 상(象)을 낳았다. 고수는 상(象)을 편애하여 순을 죽이고자 하여
이를 피해 다녔다. 순의 아비 고수는 무도하고, 어미는 험담을 잘하고, 동생 상(象)은 교만 방자
하여 순을 죽이려고 했지만 효성과 우애가 지극하여 소문이 나서 차기 왕으로 추천되었다. 그리
고 제홍씨(帝鴻 氏), 소호씨(少皥氏), 궁기(窮奇), 도올(檮杌), 진운씨(縉雲氏), 도철(饕餮)이라
는 인명이 나온다.”
요(堯)가 즉위한지 70년에 순을 얻었다는 것은 『書經』「堯典」을 유가들이 위필(僞筆)한 내용을
옮긴 것이다. 낙빈기는 황보밀이 「堯典」의 위필(僞筆)에 속았다고 보았다. 75) 요의 재위 기간은
38년이고, 순을 20년 간 시험한 후 차기 왕으로 추천한 것이다. 그리고 순(舜)이 형이고 상(象)
73) 駱貧基, 金載燮 외 옮김,『金文新考』中, 191-194쪽.
74) 駱貧基,『金文新考』下, 48-49쪽.
75) 駱貧基,『金文新考』下, 13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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