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94 - 국제학술문화제-동북공정 분과
P. 194
동북공정 분과
이 동생이라는 예전의 기록은 잘못된 것으로 위아래가 뒤바뀌었다. 76)
예문3)“순이 등용된 지 20년 되어 요는 순이 섭정토록 했고, 순이 섭정한지 8년 만에 요가 세상
을 떴다. 순은 단주에게 양위했지만 천하는 모두 순에게 귀의하였다. 고요는 대리(大理)가 되었
고, 순은 서른 살에 요에 의해 등용되었고 쉰에 천자를 대행했으며, 순이 58세에 요가 붕어하지
61세에 제위에 올랐다. 순이 등극한지 39년 만에 남순(南巡)을 하다가 창오(蒼梧)의 들에서 붕
어하였다. 순이 동생 상을 제후에 봉하고 아들 상균(商均)은 인재가 아니므로 우(禹)를 천거한지
17년 만에 세상을 떠났다. ‘창오(蒼梧)의 들에서 붕어하였다’는 말은 본래 舜은 당시의 혼인제
도가 푸닐루아(양급제)식이었는데 이 혼인법을 바꾸려고 하니 여성들의 반대가 심했다. 舜이 남
순을 떠나니 사모무가 帝禹를 시켜 남쪽의 舜를 죽이고 오라고 하였으며, 帝禹는 정비임 사모무
의 말을 시행하고 돌아왔다. 3년상을 마친 우는 순이 했던 것처럼 순의 아들에게 제위를 양보했
지만, 제후들이 모두 우에게 복종한 뒤에야 왕위에 올랐다. 단주와 상균은 봉토를 얻어 선조께
제사를 올릴 수가 있었다. 그들은 천자의 아들이 입는 옷을 입었고 禮樂도 마찬가지였다. 이는
우가 권력을 독점하지 않았음을 나타낸 것이다. 황제로부터 순, 우에 이르기까지 모두 같은 성에
서 나왔지만 국호는 달리하여 각자 밝은 덕을 밝히고 있었다. 황제는 有熊, 전욱은 高陽, 제곡은
高辛, 요는 陶唐, 순은 有虞, 우는 夏后라고 불러 씨는 달리하고 있었지만 성(姓)은 모두 사씨(사
氏)였다. 설(契)은 상(商)이라고 했는데 그 성은 자(子氏)였다. 기(棄)는 주(周)라고 했는데 성은
희씨(姬氏)였다.”
위 예문에서 ‘순이 등극한지 39년 만에 남순(南巡)을 하다가 창오(蒼梧)의 들에서 붕어하였다 ’는
의미는 순이 직접 통치한 기간은 9년이다. 등극한 햇수가 39년이면, 순이 요를 대신하여 섭정한
기간을 합쳐서 39년으로 본 것이다. 당시 요(堯)의 권력 장악에 순의 도움이 매우 켰다고 판단이
되며, 요(堯) 대신 섭정을 할 시기부터 요(堯)를 유폐시킨 것이다.
‘우가 권력을 독점하지 않았음을 나타낸 것이다’라는 구절은 제우(帝禹)를 좋게 표현한 것이다.
‘황제로부터 순, 우에 이르기까지 모두 같은 성에서 나왔지만’이 표현은 적절한 표현이 아니다. 순
(舜)은 신농계통으로 風성이고, 우(禹)는 황제계통으로 희(姬)성이다.
1) 『史記』본기에 왜곡된 기록 부분
『史記』본기에 기록된 왕족들의 왕위 계승 관계를 간단히 기술하면 아래와 같다.
76) 駱貧基,『金文新考』下, 51쪽.
1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