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81 - 국제학술문화제-가야사/환단고기 분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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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단고기 사료로 살펴본 살수, 선춘령, 공험진의 위치 고찰 신민식
2. 환단고기에서 설명하는 살수, 공험진. 선춘령
1) 환단고기 사료를 통해 본 공험진, 선춘령 위치에 대한 고찰
공험진과 선춘령이 세워진 시기는 1108년(예종 3년)인데 약 900년이 넘은 세월에 그 당시 거론
된 지명들이 지금에 와서 확인하기 어려운 지경이다. 많은 사서에서 공험진, 선춘령은 두만강 북쪽
700리라고 했다. 그리고 여러 지명을 거론했으나 현재까지 통용되는 지명이 아니고, 세월이 지나
면서 잊혀진 지명도 있기에 현실적으로 위치를 비정 하기가 쉽지않다. 또한 중국은 본인들의 역사
에 불리한 이러한 지명들은 의도적으로 왜곡하고 바꿨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정황은 세종 당시에
도 해당되는 것이어서 세종은 여러 신하들에게 공험진과 선춘령의 정확한 위치를 비정 하는데 중
요한 길주가 현재의 길주인지 다른 곳에 있었던 길주인지를 조사하고 보고하게 했다. 49) 세종은
고려 시대의 길주는 다른 곳에 있었던 지명인가에 대한 의문점을 갖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마치
정조가 이만응에게 물었던 “살수가 청천강이 될 수 있는가?”라고 하면서 살수가 청천강이 아닌 다
른 곳에 있는 지명이 아니었나라는 의문점과 같은 맥락이다. 세종의 지시로 조사되었던 결과 『고
려사 절요』· 『세종실록』 「지리지」· 『용비어천가』· 『신증동국여지숭람』에는 공험진과 선춘령을
찿는 과정에서 조사되었던 역사지리적인 지명들이 구체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50) 『삼국사기』에서
“수빈강이라는 강은 두만강 북쪽에 있고 그 근원은 백두산 아래에서 나오는데, 북쪽으로 흘러서
소하강이 되어 공험진, 선춘령을 지나 거양성에 이르고, 동쪽으로 1백 20리를 흘러서 수빈강이
되어 아민에 이르러 바다로 들어간다.” 51) 이 자료를 근거로 공험진과 선춘령은 두만강 북쪽에 있
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공험진, 선춘령이 북쪽 어디인지 정확히 알 수 있는 소하강과
거양성의 지명들이 현재 어디인지 비정하기가 어렵다.
또 설명하기를 “사방 경계는 동쪽으로 바다에 이르기 20리, 서쪽으로 경성 두롱이현에 이르기
40리, 남쪽으로 연해 굴포에 이르기 12리, 북쪽으로 공험진에 이르기 7백리, 동북쪽으로 선춘현
까지 7백여리”라는 구절이 있다. 두롱이현, 굴포와 같은 지명들은 현재 중국에서 찾아보기 힘든
지명이다. 모든 사료에서 두만강 바깥쪽 700리 라고 했지만 확실하게 위치를 비정할 수 있는 지명
이 거론되지 않았기에 지금까지도 많은 역사학자들이 직접 답사를 하면서 위치 비정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런 지명들을 답사하고 평생을 윤관 연구에 바친 고 윤희병(전 파평윤씨 대종회장)의
저서 『윤관장군의 여진 정벌사』에 의하면 성자산성과 성자산이 공험진과 선춘령이라고 비정하고
있다. 52) 이상태는 왕청현 부근의 백초구령에 있는 ‘려성촌’이라고 비정 한다. 53) 이인철은 『세종
49) 세종실록 권59, 세종15년(1433, 계축) 3월 20일. 瓘之置州也, 有吉州, 今之吉州, 與古之吉州同歟?
50) 이인철, (2017), 273쪽.
51) 『세종실록』 「지리지」 【在豆滿江北, 源出白頭山下, 北流爲蘇下江, 歷公險鎭、先春嶺, 至巨陽城, 東流一百二十里,
爲愁濱江, 至阿敏入海。】
52) 윤여덕, 「수빈강 선춘령에 서린 천년한」, 『북한』, 2008, 15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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