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8 - 국제학술문화제-가야사/환단고기 분과
P. 68
환단고기 분과 1
2)
다. 세종과 정조가 역사 사료를 보면서 가장 의문점을 가졌던 것은 역사지리 지명의 위치에 대한
것이었다. 그것은 지명의 정확한 위치에 따라 국가의 강역이 결정이 되기 때문이다. 이런 역사 의
식은 서희가 거란의 소송녕과 외교 담판을 할 때 결정적으로 작용을 하여 강동육주를 반환받게 되
는 결과가 되었다. 또한 조선의 태조 이성계도 이러한 역사의식을 통해 공험진과 선춘령 이남은
조선의 영역이라는 것을 명나라에 인식시키면서 조선의 강역에 대한 외교적인 성과를 갖게 되었
다. 역사지리의 지명에 대한 위치 비정은 이와 같이 중요한 역사학의 분야이다. 고조선과 고구려,
고려의 영역을 표시할 때 그 기준이 되는 것은 지명을 설명하는 사료들이다. 이런 사료의 왜곡과
훼손은 역사지리에서 커다란 장애가 되고 있다. 고려와 조선의 시기동안 국력의 축소와 여러 정치
적인 이유로 정확한 역사지리 사료의 왜곡과 훼손이 일어났다. 그 결과 우리 선조들이 개척한 영토
를 조선의 유학자들이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축소된 역사지리의 인식을 갖게 되었다. 그런 와중
에 반도 중심의 영토 인식이 대일 항쟁기 시절에 일본이 중점적으로 한 핵심사업의 결과로서 생겼
다. 일본의 도리이 류조, 이마니시 류, 시라토리 구라키치 같은 사람들이 고구려의 도읍지에 관해
중점적으로 주장한 내용은 한반도 평양이 고구려 수도였다는 왜곡된 역사 정립이었다. 또한 북한
3)
의 평양에 낙랑군이 있었다는 내용과 고구려의 압록강의 왜곡 내용이다. 일본 학자들이 북한의
평양이 고구려 평양이었다는 것을 주장하면서 살수의 위치는 자연적으로 청천강이 되었다. 또한
윤관이 개척한 고려의 영토 경계선이 되었던 공험진과 선춘령이 일본 학자들의 주장으로 한반도
의 길주나 함흥평야로 한정이 되게 되었다. 과거 역사를 보면 고구려와 수나라, 고구려와 당나라
전쟁의 원인은 역사 왜곡으로 인해서 영토 전쟁으로 확대되어 일어났다. 수나라가 고구려를 공격
한 것은 고구려 도읍지 평양이 낙랑이고 그 낙랑은 중국의 옛 고토였다는 역사의식에서 생긴 것이
4)
다. 이와 같은 동일한 사례로 조선의 임진왜란이 발발한 원인이 ‘가야가 임나’라는 역사 인식이
동기가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가야가 임나라는 임나일본부설’의 그런 왜곡된 역사의식이
또한 정한론의 기초가 되었다는 것을 주장하는 연구가들이 있다. 복기대는 “역사는 국경을 넘으면
분쟁이 된다. 올바른 역사학이 안보의 시작이다”라고 했다. 지금은 역사전쟁의 시기이다. 역사전
쟁은 반드시 역사지리의 왜곡에서 시작된다. 지금 이러한 역사지리의 왜곡이 현재도 자행이 되어
일본은 독도가 자기 땅이라고 일본 교과서에 버젓이 쓰고 있고 국제사회에서 그것을 주장한다. 이
러한 왜곡된 역사관이 다음 세대에 영토전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과거 역사를 통해 교훈으로 삼아
야 된다. 살수대첩이 일어났던 살수의 위치와 윤관 9성의 기준이 되었던 공험진, 선춘령에 대한
지명을 ‘올바른 역사지리학’으로 고찰이 필요한 이유이다.
2) 『홍재전서弘齋全書』 卷百十六 / 經史講義五十三綱目[七]
3) 복기대, 「동북아시아에서 한사군의 국제 정치적 의미」, 『강원사학』 28, 2016, 28쪽
4) 복기대는 논문에서 수경주에 평양에 패수가 있다는 역도원의 주장부터 왜곡된 역사가 그 뒤에 구당서, 신당서를
거치면서 평양낙랑설이 대두한다. 이세민이 직접 주도해서 쓴 『괄지지』를 바탕으로 주전론자들의 주장에 의해 고구려
당나라 전쟁이 발발되었다고 보았다.
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