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6 - 국제학술문화제-가야사/환단고기 분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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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사 분과 1


                 단 기비지역 뿐 아니라 큐슈에도 기내야마토에게 지배받지 않는 독자적 정치세력이 또한 있었다.

                 김석형은 북규슈 최대 호족 쓰쿠시노키미 이와이(筑紫君磐井)가 6세기 20년대에 ‘기내야마토에
                 대해 반란’을 일으켰다고 한것도 ‘반란’이라고 볼수 없고, 기내야마토가 서쪽으로 세력을 넓히면

                 서 북규슈 세력하고 부딪히면서 북규슈 세력이 ‘대항’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22)  즉, 시기를 조작하
                 여 마치 한반도 고대 국가들에 기내야마토 왜 정권이 거대한 영향력을 휘두른 것처럼 기록한 대표

                 적인 것이 ‘임나’ 관계 기사이고, ‘진구황후의 신라정벌’ 기사라고 보았다. 다음은 이에 관한 김석
                 형의 견해를 소략 정리한 것이다.

                   ① 5세기이전의 것으로 시기가 조작되어있는 사건들 중에서=> 숭신천황 65년(서기전 33년) 과
                 수인천황 2년(서기전 28년) 기사. 숭신천황 65년조에 ‘가을 7월 任那國이 蘇那曷叱知를 보내어 조

                 공하였다. 任那는 筑紫國에서 2,000여 里 떨어져 있고, 북쪽은 바다로 막혀 있으며 鷄林의 서남쪽
                 에 있다.’ 와 수인천황 2년조에 소나갈지지가 고국 ‘임나(미마나)’로 돌아가던 중에 시라기(신라)

                 가 길을 막고 소나갈지지가 천황에게 받은 비단 등을 빼앗아간 이후로 ‘임나(미마나)’가 신라에 적
                 대적인 관계가 되었다는 기사는 그 시기가 조작되었다는 것이 김석형의 견해이다. 이 사건이 일어

                 난 시기는 6세기 이후 이고 임나의 소나갈지지가 본국으로 돌아가다가 신라에게 비단등을 빼앗긴
                 사건이 일어난 곳은 일본열도 기비지역 오카야마현에서 일어난 사건으로 보았다. 오카야마 현 오

                 꾸군은 ‘시라기’가 있던 곳이라는 ‘오카야마현 통사’ 등 일본 측의 기록으로 알 수 있다.                              23)
                   ② 진구황후 신라정벌 기사에 대해=> 『일본서기』에는 중애천황 9년(200년)부터 7세기 전반기

                 까지 거의 500년간 약 17회에 걸쳐 야마토정권이 신라를 정벌했다는 기사와 임나일본부(미마나
                 미야케)에 관한 기사가 나온다.           24)  현재 일본과 남한의 강단 가야사학계는 임나일본부설이 폐기

                 되었다고 주장하면서 논조가 좀 완화된 듯 하지만, 기본 전제 논조는 여전히 그대로 유지되고 있
                 다. 그것은 기내야마토 왜 정권이 4세기부터 6세기까지 경상남도 서부와 전라남북도 전체에 강력

                 한 영향력을 미쳤다는 것이다. 따라서 『일본서기』에 나타나는 지명을 그대로 전부 한반도 남부에
                 비정하고 있는 것이다. 김석형은 규슈로 이주한 가야 백제 계통소국 세력들이 동천하여 기내 야마

                 토에 자리잡아 세력화 되면서 이즈모와 기비 지역에 있던 신라계통 소국들과 충돌한 내용을 기록
                 한 것이 『일본서기』의 신라정벌 내용이며, 사건들이 벌어진 실제 시기는 6세기 즈음이라고 보았

                 다. 즉, 이즈모에서 기비지역까지는 신라계통 소국들이 독자적 정권들을 형성하고 있었고, 기내



                 22) 김석형은 527년의 이와이 사건의 시라기, 미마나도 기비지방에서 찾아야 하는데, 이렇게 보면 시라기-미마나 영
                 토분쟁에 규슈에 있던 이와이가 개입한다는 것이 방향상 맞지 않는 것이 된다. 이에 대해 김석형은 시라기–미마나 영토
                 분쟁 사건과 규슈의 이와이 사건은 두 개의 별개의 사건인데, 일본서기가 두 개의 사건을 하나로 섞어서 편집 서술한
                 것으로 보았다. 두 사건의 핵심내용은 조선계통 소국들 사이의 영토분쟁에 야마토 왜가 개입하면서 기비지역으로 세력
                 을 확장해갔으며, 규슈 이와이 사건 역시 야마토왜가 규슈로 세력을 확장하면서 조선계통 소국이었던 이와이와 충돌한
                 것으로 해석했다...김석형(1988), 233~234쪽
                 23) 김석형은 현재 기비지역 오카야마현에 고구려, 백제, 신라, 임나 가 있었다고 보았다. 이것에 대한 문헌 근거와
                 고고학적 근거는 뒤에서 조희승을 설명하면서 서술할 것이다.
                 24) 김석형(1988),17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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