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7 - 국제학술문화제-가야사/환단고기 분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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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다 소키치(津田左右吉)와 남한 강단 가야사학계  김수지



                 야마토지역은 가야 백제 계통의 정권이 들어서면서 기비지역과 강한 충돌을 일으켰고 이것이 기

                 내야마토 정권이 신라정벌을 수십차례 행했던 이유라고 해석했다.                          25)  따라서 『일본서기』 신라정
                 벌 기사에서 언급되는 지명들은 기비지역인 오늘날의 오카야마현에서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석형은 기비지역 오카야마현에 한국 고대국가들의 분국들을 위치비정했는데, 그에 관해 고고
                 학적 근거들을 함께 제시하며 연구를 좀더 세분화한 사람은 조희승이다. 따라서 김석형의 분국론

                 근거들을 더욱 보강한 조희승의 근거들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다음은 기비지역 오카야마현이 『일본서기』에서 언급한 ‘임나’ 관계 기사와 ‘신라정벌’ 기사 내

                 용의 공간이 되는지에 대한 조희승의 연구 근거들을 소략한 것이다.



                   1) 일본열도에서 발견되는 분국의 근거들- 지명, 조선식산성, 고분(소위 ‘3종세트’)                           26)



                   일본에서 ‘가라(가야)’라는 말은 지금은 외국 일반을 가리키는 말이 되었는데, 가라(加羅)가 조
                 선이란 뜻인 가라(韓)로 전화되고 후에 韓이 唐(가라)으로 된 것이다. 韓이라는 글자는 일본에서만

                 가라로 읽었다.     27)  이에 일본열도에 있는 가야계통 지명 분포 와 그 지명이 있는 곳에 ‘조선식산성’
                 과 ‘가야식 고분’이 발굴된 지역이 많은데 여기서는 기비(吉備)지역만 예를 들어 소략하면 다음과

                 같다.



                   ① 기비(吉備) 오카야마현(岡山県) 지역..가야계통 지명, 조선식산성, 고분..3종세트
                   ㉠가야계통지명..가야노(栢野), 가야데라(栢寺), 가라도(唐戶), 가야산(栢山), 가라꼬(辛人里), 가

                 야무라(栢村), 가라마쯔(唐松), 가야(蚊家, 伽耶), 가라가와(辛川) 등.
                   ㉡조선식산성..기노죠산성(鬼之城山).. (ⅰ)2.8km의 성벽을 두른 조선식 산성임. 2개의 봉우리

                 를 에워싸고 흙담과 돌담(렬석)으로 성벽을 쌓은 조선식 산성 축조법을 그대로 따르고 있음.
                 (ⅱ)1945년 이전에 이미 알려져 있었으나 1970년대에 일본 학계의 주목. 일본고고학계의 답사에

                 의하여 이것이 조선식 산성이라는 것 확인. <고고학저널> 1976년 117호. (ⅲ) 산성벽은 자연 지세
                 를 이용하여 거의 가파로운 절벽이지만 산성안은 기복이 완만한 준평원..흙담과 돌담을 둘러쳐 축

                 성..수문5개 성문3개..산성안의 저수지 8개..저수지 겉면적은 평균500ml로서 8개의 저수지 물을
                 합치면 4000t이 넘음. 항시적인 물 원천을 확보..성안의 많은 군사 및 주민들이 거주할 수 있도록

                 준비.



                 25) 김석형(1988),172쪽.
                 26) 본고의 지면 관계상 일부 만 예를 들어 서술하겠다. ‘가야 지명’을 중심으로 서술할 것이다.
                 27) 조희승 지음, 『북한학계의 가야사 연구』, (도서출판 말, 2020), 26쪽~ 264쪽 “일본에서 韓을 가라라고 읽게 된
                 것은 가야(가라) 사람을 가리킨 데서부터 온 것이다. 일본에서 가라히또(韓人, 辛人, 唐人)와 아야히또(漢人)란 가야사람
                 을 가리킨 말이었으며 6세기 이후 가야가 멸망하여 가야사람들이 백제에 흡수되면서 백제사람까지도 가라히또(漢人)
                 라고 부르게 되었다.” 26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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