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8 - 국제학술문화제-가야사/환단고기 분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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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사 분과 1
㉢고분..두 개의 츠쿠리야마 고분.. 작산(作山)고분, 조산(造山)고분
(ⅰ)작산고분.. 오카야마현 소샤시 미쓰스에 있는 고분. 형상은 전방후원분. 국가 사적으로 지
정. 오카야마현에서는 제2위를, 전국적으로는 제10위 규모의 고분으로, 5세기 중엽(고분시대 중
기)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 길이 285미터. (ⅱ)조산고분..조산고분은 오카야마현 오카야마시 기타
구신조시타에있는 고분. 형상은 전방후원분.국가사적으로 지정.길이 350미터. 오카야마현에서
는 최대, 전국에서는 제4위 규모의 거대고분으로, 5세기 전반(고분시대 중기)에 축조. (ⅲ)두 개의
고분주변에는 작은무덤떼들이 있는데, 작은무덤떼와 초대형 고분의 병존은 그들이 같은 시기에
병존했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것은 두 고분의 주인공들이 기비지역 일대의 작은 소국들을 지배
했던 왕급 인물이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ⅳ)일본고고학회,<기비정권의성격>..전반기 무덤의 거
대화 경향은 이와같은 공동체를 디디고선 지역적인 정치집단의 수장층이 전제권력을 관철해가는
모습을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타 지방을 뛰여넘은 거대한 무덤이 기비의 땅에 축조되였
다고 하는 것은 여러 농업공동체 위에 우뚝 솟은 기비의 최고수장이 도달한 전제군주로서의 권력
의 압도적 강대성을 반영한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비고..조산고분의 배총인 사까끼야마(榊山)고분..(ⅰ)사카끼야마고분에서는 많은 도검, 방제
신수경, 여러 가지 구슬과 함께 6개의 청동제말모양띠고리가 나왔음. 이 청동제말모양띠고리는
일본에서 유일무이한것으로서 그 어떤 의심도 가질 수 없는 완전히 조선(가야)적인 것. (ⅱ)청동제
말모양띠고리는 경북 영천 어은동, 상주, 선산고분들에서 나온것과 재질, 형식, 형태에서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똑같음. 청동제말모양띠고리가 나온 상주는 옛 사량벌국이 자리잡고 있던 곳인데
사량벌국은 신라장수 석우로에 의하여 통합된 것으로 신라와는 적대적인 나라. 선산 역시 가야땅
이였는데 신라에게 통합됨. 이로인해 이곳 주민들이 일본땅으로 이주했을것.(ⅲ)또 김해 대성동고
분군의 구지로고분군의 42호 무덤에서도 사카끼야마 무덤에서 나온 청동제말모양띠고리와 똑같
은 띠고리가 나옴. (ⅳ)오카야마에 있는 하또리향의 13개 마을은 가야마을-이따베향, 아소향, 오
오이향, 히와향 등등.
2) 기비(吉備)지방 오카야마현의 성씨와 지명의 관계..기비(吉備)지방 기비(吉備)씨 28)
『일본서기』의 ’임나‘ 관계기사는 크게 ①웅략천황의 「웅략기」, ②계체천황의 「계체기」,③흠명
천황의 「흠명기」 에 주로 나타난다. 이 기사들에는 40~50명의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그들은 기비
(吉備)지방 출신이 거의 대부분이다. 「웅략기」부터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① 「웅략기」..6년 8월 기사..-기비유게노오오조라(吉備弓削部虛空), 기비시모츠미치노오미사
카츠야(吉備下道臣前津屋) 이들 두명의 기비출신 인물들이 야마토왕(천황)에게 반감을 갖게 되자
야마토왕(천황)은 기비씨 일족 70명을 죽임. =>그 후 뒷일의 수습을 위해 다사 파견 문제와 신라정
28) 조희승 지음, 『북한학계의 가야사 연구』,도서출판 말, 2020, 355쪽~37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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